잡학사전/역사 잡학 156

태종의 결단, 조선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실리 선택.

태종의 결단, 조선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실리 선택.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태종은 즉위 18년에 세자 이제의 행실에 대한 각종 상소와 신료들의 주청을 받아들여 그의 지위를 폐한 후, 경기도 광주로 추방한 뒤 3남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을 한다 당시 그는, 아버지로서의 자식에 대한 연민과 군주로서 법도의 단호함을 보여야 하는 깊은 고뇌를 하면서 고민을 했는데 장남을 폐하고 3남을 후계자로 정하자, 신료들과 왕비 원경 황후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처음에 태종은 모든 혼란을 줄이기 위해 즉시 후계자 인선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제(양녕대군)의 아들(당시 5세)로 후계를 이으려고 했지만, 개국 초기 안정되지 못한 왕권을 어린 세손들에게 맡기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태종은 장자 세습의 관례나 ..

상나라 주왕, 왜 충신 비간의 심장을 도려냈을까?

상나라 주왕, 왜 충신 비간의 심장을 도려냈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충언과 직언, 충고를 듣지 않거나, 무시하다가 낭패를 본 리더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반면, 마음을 열고 충언을 흔쾌히 받아들인 리더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중국의 상(商)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로 반경(盤庚) 왕이 마지막으로 수도를 은(殷)으로 옮겨서 은나라로 부르기도 하지만 학계에서는 '은'나라를 세운 부족의 이름이 '상(商)'이었기에 상나라로 통일해서 지칭한다. 이런 상나라의 마지막 왕은 무희 달기와 함께 백성을 잔혹하게 다룬 30대 주왕(紂王)이었는데, 주(周)나라 무왕(西周 武王)과의 전쟁에서 패해 멸망한다. 상나라 29대 왕, 제을(帝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주왕(紂王)은, 30살 때쯤 배다른 형을 ..

대군주보, 환수한 국새에 낙서한 자는 누구일까?

대군주보, 환수한 국새에 낙서한 자는 누구일까? 2021년, 새롭게 국새 4점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1882년에 제작한 ‘대군주보(大君主寶)’와 대한제국 시대에 제작한 ‘제고지보(制誥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가 그것... 모두 조선의 국운이 쇠락하던 시기에 만들어졌고 해외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제고지보, 칙명지보, 대원수보는 1946년 일본으로부터 돌아왔고 대군주보는 2019년, 미국에서 돌아왔다. 한일강제병합 7개월 후, 조선총독부는 그동안 빼앗아둔 대한제국 국새 가운데 8점을 일본 궁내청(宮內廳)에 상납한다. 그러나 1946년 8월 15일, 미군정(美軍政)은 이 국새를 찾아왔고 1948년, 정부 수립 후, 우리나라에 인계한다. 하지만 환수의 기쁨도 잠시, 이 국새 8점은..

중국, 조선인 무정이 실어나른 소금 때문에 탄생한 나라.

중국, 조선인 무정이 실어나른 소금 때문에 탄생한 나라. 2,000년 전, 예수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외쳤는데 모든 음식의 맛을 제대로 내려면 반드시 소금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뜻... 또 프랑스의 라즐로라는 사람은 소금을 '백색 황금'이라고 불렀고, 어떤 사람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라고 극찬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병사들이 급료로 소금을 받았는데, 이를 라틴어로 ‘살라리움’이라고 했고, 오늘날 봉급을 의미하는 샐러리(salary)가 바로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또 유럽에는 생활에 필수품인 소금을 교환하기 위해 소금 길이 발달하였는데 소금을 만드는 집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할레(Halle)나 할슈타트(Hallstatt), 영어 단어에 위치(-wich)가 붙은 드 로..

중동의 불행한 역사, 그 시작은 석유 때문이었다.

중동의 불행한 역사, 그 시작은 석유 때문이었다. 영화 ‘닥터 지바고’ 등, 웅장한 스케일의 대작을 주로 만들어온 데이비드 린 감독의 대표작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중동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현지 토착 부족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 이 계획의 하나로 영국군 중위 로렌스를 파견하는데, 로렌스는 영국의 기대 이상으로 아랍인들을 위해 헌신, 분열된 아랍군을 통합하고 마침내 오스만 제국의 중동 거점인 다마스쿠스를 점령한다. 이로 인해 아랍인들에게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전쟁이 계속되면서 심신이 피폐해지고, 잠입한 도시에서 오스만 제국군에게 포로로 잡힌다. 거기에 오스만 제국의 몰락이 가시화되면서 중동의 독립을 논의..

2발의 총성,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다.

2발의 총성,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전쟁을 선포해서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전개된 전쟁이다. 이 전쟁의 원인은 100년간의 평화 시대 속에 지속적인 팽창을 한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과 그 과정에서 소외된 독일 제국으로 대표되는 신흥 제국들의 불만 그리고 유럽 내 민족주의적 갈등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이면서 발생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 거리를 달리던 한 대의 자동차가 원래 돌아야 할 모퉁이를 딱 한 번 놓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19세의 세르비아 민족주의 혁명가였던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

역사 속에 ‘만약’이라는 말은 없다.

역사 속에 ‘만약’이라는 말은 없다. 역사는 크게 3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 사고, 그 자체로의 역사, 둘째는 기록이나 흔적으로 남아 있는 역사, 셋째는 기록을 통해 역사학자가 재구성한 연구의 결과물...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역사라는 단어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절, 'History'라는 영어를 한자화한 것... 우리나라에서는 연산군이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라고 말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지만, 그전에도 한자 문화권에서는 '史'가 역사 또는 역사를 기록한 편찬물의 의미로 두루 쓰였다. 반면, 서양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사가 헤로도토스가 역사서 'ἱστορίαι'(이스토리아이, ‘탐구들’ 또는 ‘정보들’이란 의미)를 썼는데, 전 9권으로 ..

사대주의, 우리 역사 속 사대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사대주의, 우리 역사 속 사대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동북아시아의 고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주변의 힘이 약한 소국들을 자신이 가진 힘으로 억누르고 정복해 가는 역사가 마치 무협지와 흡사하다. 거기에 약방의 감초처럼 가끔 등장하는 미인계(美人計)까지도 닮아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이성이 함께 발달하게 되는 것은 '힘의 논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과거 우리 조상들의 국제 역학관계를 보더라도 당시의 세계관은 중국을 '천하'라 부르면서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평화적 공존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중국을 상대로 했던 외교적 관행을 사대(事大)라 부르고 다른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는 교린(交隣)이라 규정하면서, '사대주의'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는데, 이를 통해 중국은 책봉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