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결단, 조선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실리 선택.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태종은 즉위 18년에 세자 이제의 행실에 대한 각종 상소와 신료들의 주청을 받아들여 그의 지위를 폐한 후, 경기도 광주로 추방한 뒤 3남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을 한다 당시 그는, 아버지로서의 자식에 대한 연민과 군주로서 법도의 단호함을 보여야 하는 깊은 고뇌를 하면서 고민을 했는데 장남을 폐하고 3남을 후계자로 정하자, 신료들과 왕비 원경 황후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처음에 태종은 모든 혼란을 줄이기 위해 즉시 후계자 인선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제(양녕대군)의 아들(당시 5세)로 후계를 이으려고 했지만, 개국 초기 안정되지 못한 왕권을 어린 세손들에게 맡기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태종은 장자 세습의 관례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