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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주보, 환수한 국새에 낙서한 자는 누구일까?

화별마 2023. 7. 4. 09:06

우리나라 국새 사진

대군주보, 환수한 국새에 낙서한 자는 누구일까?

 

2021, 새롭게 국새 4점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1882년에 제작한 대군주보(大君主寶)’와 대한제국 시대에 제작한 제고지보(制誥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가 그것... 모두 조선의 국운이 쇠락하던 시기에 만들어졌고 해외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제고지보, 칙명지보, 대원수보는 1946년 일본으로부터 돌아왔고 대군주보는 2019, 미국에서 돌아왔다.

 

한일강제병합 7개월 후, 조선총독부는 그동안 빼앗아둔 대한제국 국새 가운데 8점을 일본 궁내청(宮內廳)에 상납한다. 그러나 1946815, 미군정(美軍政)은 이 국새를 찾아왔고 1948, 정부 수립 후, 우리나라에 인계한다.

 

하지만 환수의 기쁨도 잠시, 이 국새 8점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행방불명이 되는데, 국새와 관련된 어떤 기록도 없었고 상황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다행히 1954, 제고지보, 대원수보, 칙명지보가 부산 경남도청 금고에서 발견되어 2021년에 보물로 지정된다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수도를 옮긴 정부는 경남도청 (지금은 동아대 석당박물관)을 임시청사로 사용했는데 1953년에 환도를 하면서 그 중요한 국새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던 것...

 

국새와 어보(御寶)의 차이는 국새는 왕권과 국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외교문서나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한 실무용 인장이고, 어보는 왕이나 왕비의 덕을 기리거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한 의례용 인장이다. 조선 시대에 제작된 국새와 어보는 총 412점으로 현재 73점은 행방불명이 된 상태다.

 

대부분의 국새와 어보는 종묘와 덕수궁 등에 보관했으나 일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빼앗겼고 6·25 전쟁 전후에는 미국에 도난을 당했는데, 우리나라의 국새와 어보가 미국에 많이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또 국새와 어보는 과거 왕실, 즉 정부의 소유물이라 개인은 소유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매매도 불가능하지만, 다른 나라에 약탈당한 문화재를 돌려받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우리의 국새와 어보를 돌려받을 수 있었던 것은 2014, 우리 문화재청이 미국 이민관세청(ICE)한미 문화재 환수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덕분이고, 미국의 법체계 때문에 가능했던 일... 미국에서는 특정 물품이 불법 점유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이의 소유권이 박탈당하는데, 우리나라 국새와 어보가 불법 유출되었다는 것이 입증되면 미국인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201912월에는 어느 재미교포가 국새 대군주보와 효종 어보를 경매로 구입, 문화재청에 기증한 적이 있었다우리는 국새 대군주보의 제작 시기인 1882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해, 고종은 국기와 국새를 새로 만들도록 명령했는데,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국가 상징물이 필요했기 때문...

 

그래서 박영효는 태극기를 만들었고 새로운 국새 6점을 제작했다. 중국으로부터 조선 국왕이란 글자가 들어간 국새를 받는 대신 ‘대(大)조선국 군주라는 의미로 대군주보를 만들었다대군주보189710,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더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19세기말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고종은 이 국새에 자신의 바람을 꿈처럼 담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조선의 국운은 더 쇠락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돌아온 대군주보에서 특이한 흔적이 발견된다. 국새 뒷면에 ‘W B. Tom’이라는 영문 글씨가 새겨져 있었던 것... 송곳이나 칼 같은 예리한 도구로 글자를 새겼는데 분명 미국인의 이름으로 이 국새를 갖고 있던 미국인이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 틀림없다.

 

국새에 새겨진 ‘Tom’이라는 미국인 이름... 우리에겐 치욕적인 낙서다. 왜냐하면, 돌아온 국새와 어보는 조선 왕실과 정부의 권위이자 상징이며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군주보에 남긴 상처는 깊지만 끝내 살아남아 우리 품으로 돌아와서 보물로 지정이 되었다.

 

하지만 국새 대군주보에 상처처럼 예리하게 새겨진 영어 알파벳 다섯 글자는 도무지 용서가 안 된다. 무엄하게도 대군주보에 낙서를 남긴 사람, W B. TOM... 이 자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