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역사 잡학 156

제주 4.3 사건, 배경은 무엇이고 왜 발생했을까?

제주 4.3 사건, 배경은 무엇이고 왜 발생했을까? 어떤 사건의 경우, 배경이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뒤섞여 있어 이것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매우 어려울 때가 있다. 제주 4.3 사건이 그렇다. 그렇지만 민족적 비극으로 기록되는 이런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주 4.3 사건의 배경은 무엇이고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은 1947년 3월 1일에 있었던 ‘3·1절 발포사건’인데, 당시 좌익계열의 남로당이 3·1절을 경축한다며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주도로 제주읍을 비롯하여 도내 각 면 소재지에서 많은 사람들을 동원, 집회한 뒤, 반정부 데모를 감행하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당하면서... 문제는 희생자가 이 집..

마사다 요새, 로마의 노예 대신 결사를 택한 유대인 저항군.

마사다 요새, 로마의 노예 대신 결사를 택한 유대인 저항군. 중동의 사해 근처 광야 한가운데 마사다라는 곳이 있는데,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의미의 이곳은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절벽에 자리 잡은 고대의 왕궁이었다. 원래 이 왕궁은 기원전 31년 로마 제국의 앞잡이였던 헤롯 왕이 자신의 잘못된 국정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서 자신의 피난 요새이자 왕궁으로 만든 곳... 서기 70년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자 유대인 열성 당원(Zealot) 약 960명이 이곳으로 피신해서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 운동을 펼친다. 로마 군단은 마사다의 험한 지형 때문에 무려 3년 동안이나 함락을 못 시키다가 엄청난 토담을 쌓은 후에야 마사다 요새의 수비벽을 무너뜨린다. 로마 군단에 의해 마사다 요새의 함락이 ..

판초 비아와 바퀴벌레 그리고 멕시코 민요 라 쿠카라차.

판초 비아와 바퀴벌레 그리고 멕시코 민요 라 쿠카라차. 전 세계적으로 리메이크가 되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고 불러보았을 멕시코 민요,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가 바퀴벌레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오래전, 작은아이와 함께 본 비디오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비디오 화면을 가득 채우던 가난한 농민들의 긴 행렬...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총을 들어야 했던 멕시코 농민들... 왜 1910년 멕시코 혁명이 농민들에 의해 일어나야 했을까? 1860년대 프랑스의 침략에 맞서 싸운 디아스는 멕시코의 영웅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근대적인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토지의 등기 제도를 추진한다. 하지만 당시 멕시코의 원주민은 토지 소유라는 개념이 없이 거의 모든 농민이 소유권이 확실하지 않은 마을 공동토지를 경작했..

사도세자, 왜 죽기 전까지 28년 동안 미행을 당했을까?

사도세자, 왜 죽기 전까지 28년 동안 미행을 당했을까? 정신이상 증세도 보이고 3달 동안 평안도를 몰래 여행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인 영조와 갈등을 겪다가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은 비운의 사도세자... 그가 뒤주에 갇힌 날은 1762년 7월 4일이고 그의 숨이 멎은 날은 7월 12일... 그가 갇힌 뒤주의 크기는 어린아이가 쭈그려야 앉을 만큼 비좁았다. 스물여덟 살의 젊은이가, 그것도 무더운 날씨에 8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그 좁은 뒤주에 갇혀 죽은 것... 이런 비참한 최후도 그렇지만 사실 그에게 28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독한 시간이었다. 그는 생후 100일이 되었을 때 부모의 품을 떠나 보모의 손에서 성장해야 했다. 아버지 영조가 그런 결정을 한 것은 ..

전쟁, 인간의 광기가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전쟁, 인간의 광기가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잔인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거대한 이해의 충돌이 바로 전쟁이며,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 도구이기도 하다. 군사이론가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이란 단지 다른 수단으로 행해지는 정치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한 것도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이다. 1812년 6월 24일. 나폴레옹은 전 유럽 12개국에서 끌어모은 65만 명의 군병력을 이끌고 당당하게 러시아를 침공한다. 나폴레옹은 침공에 앞서 1개월 이내에 모스크바에 들어갈 것이며 6주일 안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나폴레옹이 그렇게 큰소리를 쳤던 이유는, 나폴레옹의 보병은 다른 나라 병사들이 1분에 70보를 걸을 때 120보를 걸을 정도로 진군이 빨랐고, 러시아인들은 우매해서 모스크바만 점령하면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조선 시대 궁녀, 사극 드라마 속처럼 모두 예뻤을까?

조선 시대 궁녀, 사극 드라마 속처럼 모두 예뻤을까? 얼마 전 종방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해 조선 시대 궁녀에 대해 관심이 부쩍 늘었던 적이 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궁녀들은 모두 예쁜 모습으로 등장해서 ‘조선 시대 궁녀들은 전부 인물이 좋았구나’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일단 궁녀가 되려면 행실이 바르고 얼굴이 제법 예뻐야 했다. 왜냐하면, 국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얼굴이 예쁜 궁녀는 정조의 사랑을 듬뿍 받은 성덕임처럼 왕의 후궁이 될 수도 있었지만, 궁녀라고 해서 전부 예쁘게 생긴 것은 아니었다. 조선 시대에 ‘고수대’라는 궁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예쁘기는커녕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아주 못 생겨서 그녀를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다모(茶母), 조선 시대 성리학적 이념이 잘 반영된 제도.

다모(茶母), 조선 시대 성리학적 이념이 잘 반영된 제도. 조선 시대의 다모(茶母)는 식모(食母)나 침모(針母)와 더불어 관가나 사대부 집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천민이다. 그리고 사헌부 관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다시청(茶時廳)에 모여 차를 마시곤 했는데, 이를 위해 관사에는 궁궐의 무수리처럼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다모(茶母)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본래 역할에서 남성이 수사하기 어려운 양반 부녀자들의 사건에서부터 중요한 역모 사건까지 다루는 여성 범죄 수사관의 역할까지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다모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단 몇 줄만 등장한다. 다모는 조선 초기 왕족을 치료하는 의녀에서 출발했는데, 한 달에 한 번 의술에 관한 시험을 치르는 의녀가 3번 낙제하면 관비로 전락해서 ..

내시와 환관, 조선 시대와 고려 시대의 신분이 달랐다.

내시와 환관, 조선 시대와 고려 시대의 신분이 달랐다. 조선 시대의 내시는 남성 기능을 상실한 환관을 가리킨다. 하지만 고려시대의 내시는 성격이나 신분이 조선 시대와 완전히 달랐다. 고려 시대 내시는 환관이 아니었고, 성불능자도 아니었다. 고려 전기의 내시는 가문과 학식, 재능과 용모를 갖춘 엘리트 집단이었다. 과거급제나 음서(조상 덕에 특채로 관직을 받는 것)로 벼슬에 오른 문벌 집안의 아들이나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웠거나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이 내시로 발탁되었기 때문... 이렇게 내시는 왕의 최측근 시종으로 국정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왕 행차 시 동행, 왕명 초안 작성, 국가 기무 관리, 유교 경전 강의, 왕실 재정 담당 등의 일을 했다. 때로는 왕을 대신해서 궁궐 밖 민정을 살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