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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왜 죽기 전까지 28년 동안 미행을 당했을까?

화별마 2023. 8. 11. 11:08

사도세자 이미지

사도세자, 왜 죽기 전까지 28년 동안 미행을 당했을까?

 

정신이상 증세도 보이고 3달 동안 평안도를 몰래 여행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인 영조와 갈등을 겪다가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은 비운의 사도세자...

 

그가 뒤주에 갇힌 날은 176274일이고 그의 숨이 멎은 날은 712... 그가 갇힌 뒤주의 크기는 어린아이가 쭈그려야 앉을 만큼 비좁았다.

 

스물여덟 살의 젊은이가, 그것도 무더운 날씨에 8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그 좁은 뒤주에 갇혀 죽은 것... 이런 비참한 최후도 그렇지만 사실 그에게 28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독한 시간이었다.

 

그는 생후 100일이 되었을 때 부모의 품을 떠나 보모의 손에서 성장해야 했다. 아버지 영조가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이를 더 강하게 키우겠다는 자신의 생각 때문...

 

장희빈의 아들이면서 마음은 너무 고왔지만, 체력이 너무 약했던 이복형 경종보다 자신이 상대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임금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들이 경종처럼 유약하지 않고 강해지기를 바랐다.. 영조의 교육방식이 주효했는지 사도세자는 두 살 때 글을 배워 60개 정도의 글자를 썼고 열 살이 되어서는 노론의 문제점까지 신랄하게 비판할 정도가 되었다.

 

이런 왕자가 열다섯 살부터 세자 겸 대리청정 역할을 했으니 노론세력이 얼마나 불안해했을까? 사실 이런 똑똑함은 훗날 그가 뒤주에 갇히는 실질적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사도세자가 어려서 지내던 저승전(儲承殿)은 경종의 부인인 선의왕후가 있는 곳... 또 무슨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영조는 두 살이 된 그를 돌보는 궁녀들을 선의왕후를 모시던 사람들에게 맡긴다.

그 궁녀들은 주군이었던 경종 및 선의왕후와 적대적인 영조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었기에 그런 궁녀들 속에서 자란 사도세자가 얼마나 눈치를 많이 보면서 자랐을지 짐작이 간다.

 

또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노론의 문제점을 비판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고립상태... 거기에 처가였던 홍 씨 가문까지 그를 죽이는 데 가담했으니 얼마나 고립되어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영조는 자기 아들이 노론과 갈등을 빚는 것을 보고 오히려 아들에게만 더 가혹하게 대했다. 그리고 사도세자에 대한 부인 홍 씨의 몰이해도 세자의 고독을 부채질했다.

 

그렇게 고립이 되어 고독에 시달리던 사도세자를 열심히 쫓아다닌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영조의 후궁인 문 숙의의 오빠였던 문성국이란 인물...

 

물론 그는 세자를 감시하고 문제점을 보고하라는 영조의 지시에 따라 그랬지만, 그 기회를 이용해서 영조와 사도세자를 갈라놓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결국, 생후 100일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두 살부터는 적대적인 궁녀들 틈에서 성장하고 조금 커서는 집권세력은 물론 아버지와도 멀어지고 처가마저 자신을 죽이려 들며 아내마저 자기를 몰라주는 상황 속에서 사도세자는 지독한 고독에 치를 떨며 28년의 생애를 살았다.

 

물론 잠깐 사귄 궁녀들도 있었지만, 그런 여성 편력은 그를 파멸로 몰아가는데 일조했을 뿐... 죽을 때마저 비좁은 뒤주 속에서 혼자 신음을 했으니 그의 인생은 생후 100일부터 죽을 때까지 고독으로 점철되었다모르긴 해도 뒤주 속의 갑갑함이나 무더위보다도 고독이란 존재가 마지막까지 사도세자를 한층 더 괴롭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