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역사 잡학 156

규사(葵史), 조선 시대 서얼(庶孼)들의 역사.

규사(葵史), 조선 시대 서얼(庶孼)들의 역사. 조선 시대 양반 아버지와 양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서자(庶子)라 불렀고, 천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얼자(孼子)라고 했는데 이 두 신분을 합쳐서 서얼(庶孼)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태생부터 결격품 취급을 받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장원 급제를 해도 서얼(庶孼)일 뿐이었다. 이들 중에는 운명의 순응하는 대신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운 서얼들도 많았는데, 서얼로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여러 임금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갈아타기의 귀재 유자광, 불우한 처지를 묵묵한 학구열로 반전시킨 시대의 개혁가 이덕무 등이 그랬다. 이런 서얼들의 역사를 규사(葵史)라고 불렀는데, 조선 후기 철종 9년에 역대 서얼, 56명의 행적 및 그들이 조정에 올린..

게릴라전, 소규모 전쟁의 원조는 어느 나라?

게릴라전, 소규모 전쟁의 원조는 어느 나라? ‘키스할 때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나요? 아니면 오른쪽으로 돌리나요?’ 이 말은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서 짧은 머리의 잉그리드 버그만이 게릴라 부대원이었던 게리 쿠퍼에게 묻는 말...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게릴라들에게 천혜의 지형이라고 불린 스페인의 산악과 황량한 벌판이다. 1804년 5월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그의 야심은 프랑스 황제에 그치지 않았고 모든 유럽의 영토를 정치적으로 통일해서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복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나갔고 그 영토마다 프랑스혁명의 이념과 공화국 제도를 실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나폴레옹의 계획을 방해하는 국가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영국... 하지만 1805년 10..

부북일기, 조선 군관의 일상과 남녀 간의 성 풍속 기록.

부북일기, 조선 군관의 일상과 남녀 간의 성 풍속 기록. 부북일기(赴北日記)는 조선 시대 울산에 살았던 울산 박 씨 박계숙(朴繼叔, 1569〜1646)과 아들 박취문(朴就文, 1617〜1690)이 남긴 일기... 박계숙은 1605년, 박취문은 1644년에 함경도로 파견되어 약 1년간 군관(軍官)으로 복무했는데, 당시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일기는 총 79장으로 박계숙 일기가 24장, 박취문 일기가 55장... 이 일기는 울산 박씨의 귀중한 가보로 전문가에게 번역을 맡기면서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박계숙이 군관으로 함경도 근처에 배치되어 국경 수비를 맡은 때는 1605년... 임진왜란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던 상태였다. 당시는 무과 시험에 합격한 후 정식으로 발령을 받기 위해서는 함경도와 ..

임진왜란, 왜란이 아니라 ‘임진전쟁’이었다.

임진왜란, 왜란이 아니라 ‘임진전쟁’이었다.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조선이 개국한 이후는 물론, 17~20세기 초까지 동양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규모의 전쟁... 그러나 6.25 한국전쟁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컸던 전쟁을 왜란으로 축소해서 기록하고 있다. 50만 명이라는 대규모 병력과 당시 최첨단 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고 침략, 조선인만 200만 명이 희생되었지만, 아직도 ‘왜’라는 나라의 난동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 그러나 ‘임진왜란’이라는 용어는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나라가 7년 동안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명이 망하고 청(淸)이 중국의 대륙을 차지하는 등 동아시아에서 판도를 변화시킨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는 학술 용어로는 적당하지 않다. 왜란이란 표현은 왜인이 일으킨 난동이라는..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의 부정행위 방법과 거벽.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의 부정행위 방법과 거벽. 오래전, 조선 시대 국립대학 성균관을 소재로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정조 시대 과거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 관리로 출세를 하려면 반드시 거치는 것이 바로 과거 시험... 과거 시험 대과에서는 성적순으로 갑과 3명, 을과 7명, 병과 23명 등, 모두 33명을 뽑아 장원급제인 갑과 1등은 종6품, 갑과 2등과 3등은 정7품을 그밖에 을과와 병과의 급제자들은 정8품과 종9품의 관직에 임명했다. 그러나 과거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이 들었다, 따라서 20대와 30대를 넘기는 것은 예사였고 50살이 되어서도 합격하지 못해..

한글, 조선 시대 사람은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했을까?

한글, 조선 시대 사람은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했을까? 우리는 세종의 최대 치적으로 한글의 창제를 꼽고 있지만, 세종이 집권했을 당시에는 한글의 창제가 백성들의 피부에 와닿는 일은 아니었다. 당시는 먹고 사는 일이 최대 과제였던 만큼 세종은 ‘농사직설(農事直說)’이라는 농업기술 서적과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라는 의학 서적을 먼저 보급했다. ‘농사직설’ 덕분에 농민은 농산물 생산량을 크게 늘려 굶주림에서 벗어났고 또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늘리려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야 하기에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약재 대신 조선 땅에서 나는 약초를 이용하는 방법을 모아놓은 ‘향약집성방’을 출간한 것... 이 의학서적은 소아과와 부인과를 독립 항목으로 둘만큼 출산과 양육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향약 의술로 해열제를 ..

중국 시안사변, 공산당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간책이었다.

중국 시안사변, 공산당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간책이었다. 이간책을 사용해서 동맹을 허물거나 적의 내부를 교란시키는 사례는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손자(孫子)에 의하면 최고의 병법은 사전에 적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를 쳐부수는 것이고, 그다음은 적의 동맹 관계를 분단시켜 고립시키는 일이며, 그다음 방법이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최하의 방법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니, 성을 공격하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한다고 말했다. 1930년대 중반, 중국은 안으로는 공산주의자와의 내전이 밖으로는 만주를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위협이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국민당 중앙군사위원장 장제스는 내부의 적인 공산주의자들을 먼저 토벌해서 국내를 안정시킨 후, 일제의 침략에 맞설 생각으로 일제의 침공으로..

삼국시대의 노예, 노동력을 확보한 일종의 직업(?)이었다.

삼국시대의 노예, 노동력을 확보한 일종의 직업(?)이었다. 역사 시간에 배웠듯이 황산벌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히 산화한 백제의 계백 장군... 언젠가 방영되었던 드라마 ‘계백’을 보면 그가 노예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정치범이었던 아버지와 연루되어 있던 어린 계백은 죄인의 신분으로 호송이 되던 중 신라군에 붙잡혀서 신라 노예가 되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설정... 물론 계백이 한때 노예였다는 것은 드라마 속의 허구에 불과하지만,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 중에는 계백이 정말 노예 생활의 고난한 과정을 거쳐 큰 인물이 되었을 거라 믿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광개토태왕이나 계백이 살던 시대의 노예는 상당히 일반적인 직업이었다는 사실이고, 당시의 시점으로 보면 노예의 처지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