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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사(葵史), 조선 시대 서얼(庶孼)들의 역사.

화별마 2023. 8. 6. 13:25

조선 시대 규사 이미지

규사(葵史), 조선 시대 서얼(庶孼)들의 역사.

 

조선 시대 양반 아버지와 양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서자(庶子)라 불렀고, 천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얼자(孼子)라고 했는데 이 두 신분을 합쳐서 서얼(庶孼)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태생부터 결격품 취급을 받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장원 급제를 해도 서얼(庶孼)일 뿐이었다.

이들 중에는 운명의 순응하는 대신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운 서얼들도 많았는데, 서얼로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여러 임금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갈아타기의 귀재 유자광, 불우한 처지를 묵묵한 학구열로 반전시킨 시대의 개혁가 이덕무 등이 그랬다.

 

이런 서얼들의 역사를 규사(葵史)라고 불렀는데, 조선 후기 철종 9년에 역대 서얼, 56명의 행적 및 그들이 조정에 올린 장주(章奏)들을 모아 편찬한 책으로 대구의 유림들이 조광조와 이이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달서정사(達西精舍)에서 간행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목판본으로 소장되어 있는데, 책 이름에 규()는 해바라기라는 뜻으로 신분제도의 사슬에 얽매여 생전에 이루지 못할 꿈에 모든 삶을 바쳤던 서얼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선조가 다음과 같이 비답(秘答)을 내린 데서 유래가 되었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봄에는 온 가지나 곁가지가 다름이 없듯, 임금에게 충성하는 데에도 적자나 서얼이 다르지 않다.’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한국 현대사를 읽어보면 재미있는 주장이 하나 보인다. 6.25 전쟁은 국제전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신분 해방에 기여했다는 것...

전쟁이 불러온 대규모 인구 이동의 혼란 속에 노비 출신과 양반 출신이 섞이고 전쟁 이후 인구가 급속히 불어나 도심에서 누가 양반이고 상민과 천민의 후손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작금의 세상에서는 신분의 차이를 두지 않지만, 일본보다 정도가 심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과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극심한 학벌 세습제와 파벌주의 등으로 조선 시대의 서얼 신분처럼 정말 소외되고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일까?

인간의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떠오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