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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백성을 버린 임금의 배를 채워 준 떡.

별빛마을 손호종 2024. 10. 19. 10:26

인절미

 

인절미, 백성을 버린 임금의 배를 채워 준 떡.

 

조선의 22대 왕 정조가 하루 생활을 돌아보며 작성한 일성록을 보면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에 바친 진찬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각양각색의 인절미를 올렸고 잔치가 끝난 후에는 병사들과 수발을 들었던 하인들에게 인절미를 주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렇게 인절미는 만들기가 쉬우면서 맛도 좋아 남녀노소가 즐겨 먹던 떡으로 가장 많이 만들었던 지역은 잡곡이 많이 생산되는 황해도와 평안도였다.

 

또 인절미는 종묘 제례에도 올랐는데, 실학자 성호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사치해져서 제사상에 인절미가 점차 사라졌으며 저잣거리에서도 찾는 사람이 줄어 인절미를 파는 장사치들도 줄고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인절미라는 이름의 유래가 어떻게 인조반정과 관련이 있을까?

 

1623313, 이귀와 김류, 이괄, 김자점 등의 서인들은 세검정에서 칼을 씻으며 결의를 다진 후 창의문을 넘어 창덕궁으로 몰려와 선조의 5번째 아들 정원군의 장남 능양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반정을 일으킨다.

 

인조반정 다음 해, 인조반정의 공신이었던 이괄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는데, 그는 충직한 무신이자 글도 잘 쓰고 지략에도 뛰어나 광해군 때 함경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된 당대의 걸출한 인물...

 

그는 인조반정 당시 총대장을 맡기로 했던 김류가 반정 소식을 광해군이 알게 되었다는 말에 겁이 나 주춤거리는 동안 600~700명의 반정군을 총지휘했던 인물이었지만, 공훈을 정할 때 김류와 이귀는 1등 공신이었으나 이괄은 2등 공신이 되자 마음속에 불만을 품었던 것...

 

이괄의 반군이 한양 앞까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황급히 한양을 버리고 공주로 몽진을 하는데, 그 덕분에 이괄은 한양에 무혈입성한 후 선조의 10번째 왕자 흥안군 이제를 왕으로 등극시킨다. 이것이 조선 역사상 최초로 반란군이 수도 한양을 점령했던 이괄의 난...

 

한편 한양을 떠난 인조는 공주에 머무르며 반란군이 진압되기를 기다리며 공주에서 가장 높은 공산성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공산성을 내려올 때면 시장기가 몰려왔지만, 수라상에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이때 공주에 사는 한 부자가 광주리에 무언가를 담아와 인조에게 바쳤고 광주리 안에는 방금 만든 것 같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떡에 콩고물이 무쳐 있었다. 인조가 먹어 보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고 그 맛에 감탄해서 신하들에게 떡의 이름을 물었지만, 누구도 떡 이름을 알지 못했다. 다만 임 씨 부자가 가져왔다는 것만 알렸다.

 

이 말을 들은 인조는 이 떡에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가장 맛있는 떡이라는 의미의 절미(絶味)’에 임 씨 집에서 가져왔다 해서 임절미(任絶味)’라고 부르게 한 것... 처음에는 임절미로 불리던 이 떡은 세월이 흐르며 받침이 변해 인절미로 부르게 되었다.

 

공주 공산성에서 내려오던 인조의 시장기를 채워 준 인절미는 먹기도 간편하고 맛도 좋아 예나 지금이나 식사 대용으로 인기가 있는 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