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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 중세에는 금가루보다 비쌌던 향신료.

화별마 2023. 10. 23. 08:34

후추 사진

후추, 중세에는 금가루보다 비쌌던 향신료.

 

향신료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시작을 같이하는데, 5,000년 전 수메르인의 두루마리에 이미 향신료를 언급하고 있다.

 

혼합 향신료는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 때 방부 처리를 하기 위해 사용했으며 인도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미 후추와 정향 등 많은 향신료가 사용되었다.

 

또 후추와 정향 등이 지닌 살균력 때문에, 재료 저장에 필수품이었던 향신료는 향기가 병을 퇴치한다고 믿어 향을 피워 부패를 방지하는 용도로 쓰인 경우도 많았다.

 

기원전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때 다리우스 2세의 궁전에서 300명에 가까운 요리사와 향신료만을 담당하는 많은 노예들을 보았다.

 

그 후 알렉산더가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까지 정복하면서 동양 향료가 유럽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원정 때 친구였던 식물학자를 데리고 다니며 점령지에서 많은 향신료를 수집하게 했다고...

 

그 후 후추를 유럽에 판매한 것은 아랍 상인들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다마스쿠스를 지나 홍해를 건너는 고대 향료 길을 이용했다.

 

이렇게 해서 유럽에 전래가 된 후추는 당시 그리스에서 요리용이 아닌 의료용, 그것도 대개 해독제로 쓰였다.

 

유럽인들이 인도산 후추와 계피 등 향신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가 이집트를 정복한 뒤부터...

 

인도에서 무역풍을 타고 인도양과 홍해를 거쳐 이집트로 오는 항로가 개발되면서 1세기 유럽에 수입되는 물품의 반 이상이 향신료였고 대부분 인도에서 들여온 후추였다.

 

후추는 실크로드나 해로로 상업 중심지였던 호르무즈나 아덴으로 옮겨진 뒤 그곳에서 베네치아와 알렉산드리아로 운반되었다당시 후추는 너무 귀해서 로마에 도착하면 같은 무게의 금과 가격이 같았을 정도였다.

 

중세 이슬람이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장악하며 8세기경부터 지중해는 이슬람의 바다가 되었는데, 향신료는 모두 아랍 상인을 거쳐 공급되었다.

 

따라서 가격이 오르고 거기에 술탄이 과도한 관세를 부과하자 더욱 비싸졌는데, 베네치아 상인들이 아랍 상인들로부터 구입, 막대한 이윤을 붙여 유럽 각지에 팔았다.

 

그런 상황이 되다 보니 후추의 소비자 가격은 금가루 같았고 그래서 금의 무게를 잴 때 후춧가루가 사용되기도 했으며 화폐로 통용된 때도 있었다.

 

이렇게 되자 후춧가루는 베네치아를 제외한 유럽 각국에서 왕실의 독점 전매품이 되었고 후춧가루 등 향신료는 경제사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된다.

 

그 결과 후춧가루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바스코 다가마의 인도 항로 개발, 마젤란의 세계 일주 등을 만들어 냈다당시에는 동양의 향신료가 유럽 부의 원천이었기에 후춧가루를 얻기 위한 대항해 시대가 열렸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