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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라우(대구), 세계 역사를 바꾼 음식.

화별마 2023. 10. 21. 08:17

바칼라우 사진

바칼라우(대구), 세계 역사를 바꾼 음식.

 

동양의 칭기즈칸이 장거리 원정을 위한 전투 식량으로 육포를 만들었다면, 서양에서는 고대 스페인 동북부 바스크 지역에서는 생선을 햇볕에 말린 마른 대구와 소금에 절인 절임 대구를 만든다.

 

대구는 차가운 물을 좋아해서 대륙붕이 가까운 북반구의 대서양에 많이 사는데, 대서양 대구는 보통 길이가 1m가 넘고 입이 커서 대구(大口)라 불렸다.

 

또 대구는 무게도 30kg가 넘는 대형 고기로, 큰 입만큼 엄청난 대식가... 이런 엄청난 식욕 때문에 잡기도 쉬웠다.

 

바스크족은 대구를 잡기 위해 콜럼버스 이전에 이미 신대륙의 포틀랜드까지 진출, 대구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그들은 북아메리카 해안에서 엄청난 대구 떼를 발견하고 그곳을 독점하기 위해 발견 장소를 비밀에 부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 염장 대구를 만들어 유통, 유럽 내륙에 사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물고기를 맛볼 수 있었다고...

 

바스크족은 염장 대구를 만들기 위해 해안에서 천일염을 만든 것으로도 알려졌다. 천일염을 만든 이들은 소금에 대구를 절여 포르투갈과 북해에 팔았는데, 이것이 유명한 바칼라우(대구).

 

사실 콜럼버스가 대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절임 대구와 하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대구를 세계 역사를 바꾼 물고기라고 부른다.

 

그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초기 유대인들이 맨해튼 어촌에서 네덜란드에서 하던 청어와 대구잡이를 하다가 매사추세츠 근처 케이프 코드에 특히 대구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정착한다.

 

그곳 바다는 대구 산란철이 되면 대구가 배에 부딪힐 정도로 많아서 지금도 세계 4대 대구 어장 중 하나다.

 

유대인들은 잡은 대구를 햇볕에 말리거나 소금에 절여 팔면서 부를 축적, 대구 귀족이 생겨나고 부자들도 많이 탄생한다.

 

그 후 유대인 부자들은 높은 교육열로 대학 설립에 많은 재정을 지원해서 1764년 브라운 대학을 설립하기도 한다이때부터 유대인 부자들의 명문대학 설립과 재정 지원은 일종의 전통처럼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고기 잡는 기술이 발달하자 1.5km나 되는 긴 낚싯줄에 1,000여 개의 낚싯바늘을 매단 주낙으로 대구를 잡는다.

 

어업기술의 발달로 대구의 수가 점차 줄어들자, 아이슬란드와 영국은 아이슬란드 해의 대구 어업권을 둘러싸고 3번이나 전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