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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갱, 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당신의 선택이다.

화별마 2023. 7. 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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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갱, 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당신의 선택이다.

 

물건 하나를 사도 가격 비교가 필수인 시대다. 일단 인터넷에서 사는 것이 제일 저렴해서 컴퓨터를 켜고, 최저가와 배송비 유무까지 따져보고 해외 직구까지 불사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사실 가격 정보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진다면 하나의 제품에는 하나의 가격만 붙게 된다. 그런데 이 가게에서 1,000원 하는 물건이 옆 가게에서는 2,000원에 팔리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두 개 이상의 가격이 형성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가격 차별이라고 한다. 그러면 가격 차별은 왜 생기는 걸까?

 

미국에서는 자동차 판매 가격이 매장에서 딜러와 소비자의 협상으로 결정되는데, 협상으로 어떤 소비자는 호갱이 되고, 어떤 소비자는 싸게 자동차를 산다.

 

미국 법경제학자 에이러스와 시즐먼은 38명의 배우를 고용, 그들을 시카고 지역 153개 자동차매장으로 보내 고객으로 위장, 실험했다.

 

배우들은 모두 30세 대학 졸업자였고, 매장에 방문할 때 비슷한 종류의 차를 몰고 가도록 했다. 부자와 가난해 보이는 선입견을 딜러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동차 딜러가 질문하면 반드시 미리 교육받은 방법대로 비슷하게 대답하도록 했다. 딜러가 보기에 가짜 고객들은 인종만 다를 뿐 모든 조건이 비슷했다.

 

연구 결과, 딜러들은 백인 남성보다 흑인 남성에게 평균 935달러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흑인이 100만 원 정도 바가지를 쓴 것...

 

정확한 결론을 위해 다른 연구도 진행했다. 배우들 가운데 절반은 비장애인, 나머지 절반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으로 가장, 자동차 정비소로 보내 고장 난 부분이 똑같은 차를 수리하도록 했다. 이 실험 결과도 장애인에게 비장애인보다 무려 30% 정도 높은 수리비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 실험에서 나타난 가격 차별 이유를 인종 혹은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 딜러들이 호갱이 될 만한 고객을 파악하고 그렇게 제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딜러들이 흑인을 싫어해서 바가지를 씌운 것이 아니고, 흑인이 상점에서 가격 협상을 귀찮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또 조사 결과, 딜러들은 흑인과 백인 고객 가운데 오히려 흑인 고객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만약 딜러가 흑인을 싫어해서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다면, 더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흑인 딜러도 똑같이 흑인 소비자에게 바가지 가격을 제시했다는 것... 따라서 흑인 고객이 호갱이 된 것은 인종 차별이 아닌 협상을 귀찮게 생각하는 행동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차량 정비소에서 장애인들에게 30% 정도 높은 바가지 가격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 연구팀은 장애인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차에서 내릴 때 굉장히 힘든 척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 장면을 본 정비사들은 이 고객은 몸이 불편해서 바가지를 씌워서 다른 정비소로 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정비소가 바가지를 씌운 것은 장애인이 아닌 호갱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

 

연구팀은 장애인 역할을 받은 배우 중 일부에게 차에게 힘겹게 내린 다음, 무심코 벌써 다른 정비소 몇 군데 다녀오는 중이라는 말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정비소에서 제시한 가격은 정상가였다. 제시하는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날 수 있다는 판단을 해 바가지를 씌울 생각을 하지 않은 것...

 

이 연구는 가격 차별이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소비자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귀찮더라도 가격을 꼼꼼하게 비교하는 고객은 손해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론은 현명한 소비자는 가격 차별의 호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일은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대리인을 뽑는 선거도 마찬가지... 선거에서 후보자는 자신을 유권자에게 파는 판매자이고, 유권자는 자기를 대리해줄 상품을 투표로 구매하는 소비자다. 그런데 소비자가 후보자의 비교를 귀찮다고 우리 고향 출신 혹은 같은 동문이라고 뽑는 식의 호갱 짓을 하면 정치인은 유권자를 속이고 나쁜 짓을 한다.

 

그러나 유권자가 선거 때마다 꼼꼼히 후보자를 비교하고 가장 정직하면서 일 잘할 후보를 선택한다면 정치인은 유권자를 무서워하고 바가지를 씌우지 못한다. 좋은 고객이 되느냐 호갱이 되느냐는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