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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기사단, 세계 최초의 국제금융조직이었다.

화별마 2023. 7. 28. 09:34

템플 기사단 이미지

템플 기사단, 세계 최초의 국제금융조직이었다.

 

1071, 동로마 제국과 셀주크 제국 간에 벌어진 만지케르트 전투는 십자군 전쟁을 발생시킨 원인 중 하나... 이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이 패하자 기독교인들은 성지 순례를 할 수 없었다.

 

또 이 전투 결과, 이슬람 세력이 지중해 남동부 지역의 패권과 여차하면 유럽 본토까지 넘어올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따라서 교황청과 유럽 왕실은 20년 후 반격에 나섰는데, 10951127일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성전의 시작을 알리며 성지 회복과 기독교 세력의 결집을 촉구한 것...

 

십자군 전쟁은 8차례에 걸쳐 200년간 이어졌는데, 이 전쟁은 교회의 몰락과 중세 시대의 붕괴를 가져온 일대 사건이지만 세계금융사에서도 주목할만한 사건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템플 기사단이 국제적 금융 조직으로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1차 십자군 전쟁으로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 탈환에 성공했지만 사실 10만 명에 달했던 십자군은 정식 군대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 인생 역전을 꿈꾸며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가난한 농민과 부랑인들이 대다수였다.

 

예루살렘 탈환으로 순례자는 증가했지만, 순례 중 재산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문제로 1119, 9명의 경건한 기사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가 바로 템플 기사단... 정식 명칭은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기사들이었다.

 

이 기사단의 주요 임무는 성지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으로 붉은 십자가 문양의 옷을 입고 칼과 방패를 손에 쥔 모습이 이들의 트레이드마크...

 

탬플 기사단의 취지에 공감한 수도사들의 참여가 이어지자 이 기사단은 군사적 면모까지 갖추며 유럽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목에 요새를 지었다.

 

결국, 교황청도 1128년 템플 기사단을 정식으로 승인했고 교인들은 열렬한 환영과 지지를 보내며 토지나 금전 같은 물질적인 후원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템플 기사단은 경제력까지 갖춘 부유한 단체가 된다.

 

그러나 1187년 이슬람 세력의 반격으로 예루살렘을 빼앗기면서 십자군 전쟁은 13세기말까지 이어진다. 교황과 유럽의 왕실은 템플 기사단에게 지속적인 자금 지원을 한다.

 

그러나 막대한 부를 축적한 기사단은 초기 모습과 다르게 금융업에 더 치중했다. 전쟁 동안 주요 길목에 지부를 만든 기사단은 촘촘한 조직망을 이용, 물품 조달과 자금 관리, 환전 같은 금융 거래를 했다.

 

기사단이 제공했던 금융 기능은 장거리 송금과 환전 업무... 순례자는 로마에 있는 템플 기사단 지부에 돈을 맡기고, 이에 대한 증명서를 발급받아 여행을 떠나면 끝이었다. 로마에서 발급받은 증명서를 제시하고, 기사단 지부에서 필요한 만큼 돈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편리함은 당시 교역에 종사하던 상인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었고, 유럽의 왕실이나 귀족, 성직자를 상대로 이들은 은행과 유사한 기능까지 수행했다..

 

이렇게 금융이라는 부업을 하는 동안 템플 기사단은 교황이나 왕실도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고 13세기 후반 무렵, 이들의 연간 수입은 영국 왕실의 200배 수준... 하지만 이들의 막대한 재산과 영향력은 재앙의 불씨가 된다.

 

1285, 프랑스 왕에 오른 필리프 4세의 왕실은 십자군 전쟁과 주변 국가와의 분쟁으로 템플 기사단은 물론 유대인들에게도 거액의 빚을 지고 있었다.

 

정상적인 채무 상환이 불가능했던 그는 빚을 면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외로 추방했고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템플 기사단은 우상 숭배와 신성모독, 부정부패 혐의를 씌워 단원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기사단을 와해시켰다.

 

또 필리프 4세는 밀서를 통해 1307년 한 해 프랑스에서만 3천여 명의 단원이 체포했고 교황 클레멘스 5세를 협박, 유럽 전역에 있는 기사단의 해산을 명하도록 했으며 기사단 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는 화형을 당하고 기사단의 재산은 몰수되었다.

 

하지만 기사단장 자크 드 몰레는 화형을 당하기 직전, 비밀리에 조카에게 단장 직위를 물려주고 기사단의 재건을 도모했다. 이와 함께 몰수되지 않은 기사단의 숨겨진 재산과 보물의 정보도 알려주었다.

 

한편 몰수한 재산이 생각보다 적다고 여긴 필리프 4세도 이들의 재산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템플 기사단이 이끌던 거대한 금융 조직은 사라졌지만, 이들이 숨겨둔 막대한 재산과 보물의 행방 역시 오늘날까지 전설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