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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왜 술집 주인들이 시민들을 선동했을까?

화별마 2023. 12. 3. 12:44

프랑스혁명 이미지

프랑스혁명, 왜 술집 주인들이 시민들을 선동했을까?

 

루이 15세는 루이 14세처럼 리더십이 없었지만,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7년 전쟁 등과 같이 크고 작은 전쟁으로 빚을 진 것은 물론 대부분의 국외 식민지까지 상실한다.

 

1753년 당시 프랑스 국가 부채는 무려 136천만 루블, 현재 가치로 약 3,240억 달러였고 7년 전쟁이 끝난 이후인 1764년에는 부채가 235천만 루블, 현재 가치로 약 6,000억 달러에 달하게 된다.

 

결국 다른 나라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의 이자를 감당해야 했는데, 루이 16세에 이르러서는 정부 수입의 43%를 이자로 지출한다.

 

이런 상황에서 루이 16세는 미국 독립혁명을 지원해서 프랑스 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내몰았고 설상가상으로 대흉년이 일어나 국민들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와인만큼은 꾸준히 보급되었는데, 1780~1785년까지 파리에서만 1인당 연간 122L의 와인과 9L의 맥주를 마셨다고...

 

현재 프랑스의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이 40L인 만큼 18세기의 프랑스는 거의 물 대신에 와인을 마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당시 포도 재배자들은 토지세를 냈다. 이것도 무척 버거운 상황인데, 시장에다 와인을 팔 때도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한다와인은 궁정의 재원이기도 했는데, 파리 시내로 반입되는 와인에 대한 관세를 매긴 것...

 

15세기 백년전쟁 이후 재건을 위한 재원 마련으로 시작된 관세는 더 올랐고 주로 성문과 센강 입구에서 세금을 내야 했는데, 가격이 아닌 양에 대해 과세하다 보니 저렴한 와인은 더 가격이 올라 버린다.

 

따라서 파리로 들어오는 저가 와인의 가격이 3배 정도 오르자, 파리 성문 밖에서 와인을 마시는 갱게트라는 것이 유행, 시내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즐길 수 있었다.

 

1789,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데, 바스티유 감옥 습격 3일 전, 시민들은 세무서를 습격해서 때려 부쉈고 술집 경영자들은 이런 시민들에게 와인을 저렴하게 팔면서 그들을 선동한다.

 

도 파리 시민들은 습격한 곳에서 와인을 강탈해서 마시고 취했으며 연대한다. 그 흐름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까지 이어진다.

 

그로 인해 와인의 관세가 철폐되지만, 프랑스혁명은 시민들에게 와인의 낙원을 선사하지 못했는데, 혁명 정부 역시 징수를 원했고 세무서를 재건했기 때문... 이렇게 철폐되었던 관세는 다시 부활했고, 와인의 관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즈음이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 와인 산업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일단 농경지 활용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이전에는 식량 부족을 우려해 곡물 재배를 거의 강제했지만, 이제는 원하는 작물을 선택할 수 있었고 수익률이 높은 포도밭을 경작할 수 있게 된 것... 또 포도밭도 재분배해서 교회와 수도원이 더 이상 재산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고, 모든 자산은 국유화된다.

 

와이너리를 소유한 귀족 중에서 외국으로 망명하거나 정치범으로 기소된 사람들의 재산도 몰수되어 와이너리의 주인이 많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