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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독일에 여왕이 없었던 이유는?

화별마 2023. 10. 21. 07:40

살리카 법전 이미지

프랑스와 독일에 여왕이 없었던 이유는?

 

영국의 엘리자베스를 비롯해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스페인의 이사벨,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등 중세와 근대 유럽 왕국에는 여왕이 재위했다.

 

이런 여왕 중에는 상당한 치적을 쌓은 여왕도 있었지만,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프랑스는 1천 년이 넘도록 여왕이 다스렸던 적이 없었고, 이는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독일과 통합적인 역사를 지닌 오스트리아의 경우 18세기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여제로 즉위했으나 그것은 합스부르크 왕통이 끊어진 탓으로 결국 그로 인해 유럽 각국의 간섭을 받아 대규모 국제전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독일에 여왕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와 독일에만 여왕이 없었던 까닭은 게르만 전통을 따른 살리카 법전 때문...

 

살리카 법은 고대 게르만의 부족법으로 유럽 왕가의 공통 조상으로 알려진 프랑크 왕국을 세운 클로비스 1세가 6세기 초에 만든 법이라고 알려졌다.

 

사정되어 있던 이 법이 다시 등장한 것은 1316년 프랑스에서 국왕 루이 10세가 아들 없이 딸만 남기고 죽으면서...

 

동생 필리프가 섭정을 맡았는데, 권력을 형의 딸에게 주기 싫어서 권력을 지지해 줄 논리가 필요했다.

 

섭정은 왕권은 남자만 누릴 수 있다고 주장을 했는데.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지을 방안으로 파리의 대도서관에 쌓여 있던 고서 중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법전을 부활시킨 것이 살리카 법이었다.

 

이 법전에는 장자 계승제를 기본으로 딸에게 토지를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훗날 이것이 왕위 계승까지 확대, 적용된 것이다.

 

확실히 중세 유럽은 단일한 그리스도교 문명권이었으나 문명의 중심과 변방의 차이가 컸다.

 

따라서 중심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살리카 법전이 엄격하게 적용된 데 비해 영국이나 스페인, 러시아 같은 왕국들은 변방이었기에 왕통이 끊어졌을 경우 자연스럽게 국제적 간섭 없이 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

 

지금이야 대통령을 포함,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여성이 차지하는 경우도 많고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과거 왕조시대에는 보편적으로 남성 중심주의가 지배했으므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군주가 여성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정치 행정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