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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무덤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해서 불렀을까?

화별마 2023. 10. 19. 13:22

무덤 이미지

조선 시대 무덤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해서 불렀을까?

 

성묘(省墓)라는 말은 살필 성()과 무덤 묘()’자로 조상의 무덤을 살핀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왜 산소에 대해 무덤 묘()’자를 쓰고 천마총, 무용총, 무령왕릉처럼 무덤마다 붙이는 명칭이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 시대에는 죽은 사람(死者)의 무덤을 (), (), (), (), ()’ 5가지로 구분해서 불렀다.

 

먼저 무덤 능()’은 왕과 왕비(후비)의 무덤으로 영릉(英陵)’은 세종대왕과 소헌 왕후 심 씨의 무덤이고 서울 성북구의 ‘정능(貞陵)’은 이방번, 이방석 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낳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정비, 신덕왕후 무덤이며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東九陵)’은 조선왕조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와 후비의 무덤...

 

또 서울 강남구 선정릉(宣靖陵)’은 조선 9대 왕 성종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의 무덤인 선릉(宣陵)과 두 사람의 아들인 중종의 무덤인 정릉(靖陵)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서울 은평구의 서오릉(西五陵)경릉(敬陵), 창릉(昌陵), 익릉(翼陵), 명릉(明陵), 홍릉(弘陵)’ 5개의 능()을 말하는데...

 

성종의 요절한 아들, 의경 세자 덕종과 소혜왕후의 무덤이 경릉(敬陵)이고 조선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무덤이 창릉(昌陵)이며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무덤이 익릉(翼陵)이다.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와 계비 인원왕후의 무덤이 명릉(明陵)이고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무덤이 홍릉(弘陵)이다

 

그리고 서울 서초구의 헌릉(獻陵)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무덤이고 경기 화성시의 건릉(健陵)은 조선 22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묘이며 융릉은 사도세자와 헌경왕후의 무덤으로 건릉은 정조와 효의 선왕후의 합장 무덤인데, 융릉과 건릉을 합쳐 융건릉이라 부른다.

 

충남 공주에 있는 백제 25대 무령왕릉은 무덤 지석에 백제 사미왕, 즉 무영왕이라고 쓰여있어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틀어 왕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인데, 피장인(被葬人)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으면 왕과 왕후의 무덤에 능(陵) 자를(陵) 붙인다.

 

두 번째 동산 원()’자의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 비 그리고 왕의 친척 무덤이고 피장인(被葬人)이 누구인지 알려진 일반인의 무덤은 묘()라 부르는데, 왕이었지만 왕 대접을 못 받은 연산군과 광해군도 능()이 아닌 묘().

 

마지막으로 무덤 총()’무덤 분()’자를 붙이는 것은 피장자를 알 수 없는 옛날 무덤에 붙여 부르는데, 경주 황남동의 천마총(天馬冢)은 왕릉(王陵)으로 추정되지만, 무덤의 피장자를 알 수가 없어 총이라고 부르는 것...

 

한 왕조를 이끌었던 왕과 왕비의 무덤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관리되는 경우는 조선왕릉이 유일하며 조선왕조 500년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담고 있는 조선왕릉은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