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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 보험설계사가 될 뻔한 성악계의 전설 (1)

화별마 2023. 7. 18. 08:37

파바로티 사진

 

파바로티, 보험설계사가 될 뻔한 성악계의 전설 (1)

 

3 테너하면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고 호세 카레라스를 떠올리는데, 1990년 로마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 때 '3 테너'가 했던 역사적인 공연은 지금까지 많은 감동으로 남아 있다.

 

특히 덥수룩한 구레나룻이 잘 어울렸던 파바로티는 성악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위대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이탈리아 중북부의 모데나에서 빵 가게를 하던 아버지 페르난도와 담배공장에 다니던 어머니 아델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경험한 것처럼 파시스트와 레지스탕스의 싸움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어수선한 시기... 전쟁이 끝나자 파바로티의 아버지는 전쟁통에 할 수 없었던 합창단에 다시 입단해서 활동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극장에 갔던 아마추어 테너... 그의 집안에는 빵 냄새와 함께 항상 음악이 넘쳐났는데,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처럼 파바로티도 어릴 때부터 성악에 두각을 나타내서 아버지와 함께 아마추어합창단과 교회 성가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직업적으로 성악을 하려고 하자 그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말렸는데, 아들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성악가의 길이 얼마나 험난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체육 교사가 되려던 아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그의 어머니... 당시 이탈리아는 참혹한 전쟁의 겪은 후, 누구나 마음의 치료가 필요했던 시절로 사람들은 오페라극장으로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오페라 가수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으로 유명한 성악 교수에게 사사할 수 있었지만, 파파로티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로 초등학교 보조교사와 보험설계사 일을 해야 했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많은 여성 고객을 유치, 보험회사로부터 정규직 자리를 제안을 받았을 정도...

 

파파로티는 단역이지만 꾸준하게 배역이 주어지자, 미련 없이 보험설계사 자리를 그만두고 성악에만 전념한다. 당시 동갑내기 친구이었던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는 일찌감치 데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장 무대에 노래를 불렀지만, 그는 북부 이탈리아의 작은 극장의 조역으로 만족해야 했다.

 

당시 그는 깜깜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푹 자고 일어나거나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겨 음식을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1961, 모데나 극장에서 오페라 라보엠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그는, 승승장구하면서 단숨에 세계를 아우르는 테너로 발돋움한다. 하지만 무대 위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불안감과 초조함을 맛있는 음식으로 해결하다 보니 몸무게가 180kg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도 했다.

 

파바로티의 음악 경력에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지휘자 리처드 보닝... 1963년 비상하고 뛰어난 테너였지만 이끌어줄 사람이 없던 파바로티에게 보닝은 호주 투어를 제안한다.

 

당시 보닝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으며 대단한 제작자이기도 했다. 그는 신장이 180cm인 자신의 부인이었던 소프라노 준 서덜랜드의 파트너로 능력 있는 테너를 찾고 있었는데, 소프라노 중에서도 높은 음색인 레제로 파트였던 준 서덜랜드와 비슷한 음색의 상대역 테너들은 모두 키가 작았다.

 

아무리 키높이 구두를 신어도 사랑의 이중창을 부를 때면 소프라노의 머리 하나가 더 커 보여서 멀리서 보면 세기의 연인이 아니라 자애로운 어머니 같아 현실감이 떨어졌던 것...

 

그때 혜성같이 등장한 테너가 하이 C의 제왕파바로티... 파파로티는 다른 테너가 어려워서 부르기를 꺼리는 하이 C, ‘C4’에서 두 옥타브 위의 C6 음을 자유자재로 내는 음역을 가지고 있었다.

 

테너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역이 하이 C’... 안정적으로 내는 하이 C는 좋은 테너 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로, 파바로티는 하이 C의 제왕이었다.

 

음색과 레퍼토리 그리고 180cm의 신장까지 모든 면에서 존 서덜랜드의 상대역으로 손색이 없었던 파파로티... 이후 두 사람은 세계적인 무대에 함께 서면서 30년 가까이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파바로티가 프리마돈나의 보호를 받는 초보 테너가 아니었음에도 보닝 부부는 파바로티를 30년 전의 파바로티로 생각, 이들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는 왕래조차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