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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 악보 볼 줄 몰랐던 성악계의 전설 (2)

화별마 2023. 7. 18. 08:48

파바로티 사진

 

파바로티, 악보 볼 줄 몰랐던 성악계의 전설 (2)

 

생전에 파바로티는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 379,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 140, 런던의 코벤트가든 96회 등이 그것이다.

 

1988, 파바로티가 독일 베를린 도이치오퍼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흘러나오는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불렀을 때, 1시간 7분 동안 박수가 계속 이어져서 무대 인사를 165번 해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1991년 그의 런던 하이드파크 공연에서는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부부를 포함, 15만여 명의 관객이 비를 맞으며 공연을 관람했고, 2년 후 뉴욕의 센트럴파크 공연에서는 50만 명의 관객이 그의 공연을 보았으며 이후에도 30만 명의 파리 시민이 보는 가운데 성공적인 야외공연을 해서 가장 대중적인 성악가로 이름을 알린다.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실수도 했다. 1983년 스칼라 극장에 올려진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공연 중, 심오하고 애달픈 아리아 대목에서 음이 틀리는 바람에 관객들의 야유를 받았고, 1992년 스칼라 극장의 개막 오페라 돈 카를로스를 공연하던 중 악보를 완전히 외우지 못해 얼버무리기도 했다.

 

그리고 1983년 세금 때문에 주소지를 몬테카를로로 옮겨 영주권을 획득했을 때, 1992년 모데나에서 자신이 주최한 파바로티와 친구들공연을 사상 초유의 립싱크로 했을 때, 여성 편력으로 기사가 났을 때, 탈세로 기소를 당해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를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그에 대한 평가를 보면, 대중은 항상 너그럽고, 후했지만 음악평론계는 언제나 인색했고 각박했는데, 그의 연기는 리얼리티가 부족하고 음악은 세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음악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그가 악보를 제대로 읽지 못해 본인만이 아는 표기로 기보 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 음악평론계는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런 비판이 최고조에 이른 때는 그 유명한 3 테너공연 당시... 1990년 첫 공연에서 1,000만 장의 음반과 700만 개의 영상물이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지만, 상업적인 악취가 진동하는 끔찍한 종합 선물세트 같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2시간 30분의 런던공연에서 각각 13억 원의 수입을 얻어 한 단어에 70만 원씩 벌었다는 언론의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3테너의 이름으로 총 19회 공연을 했고, 엄청난 수입은 짐작만 할 뿐 공개되지 않았다.

 

성악가가 아니었으면 체육 교사가 되거나 보험설계사가 되었을 파바로티는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는데, 유벤투스의 광 팬으로 축구를 즐겼고, 체중이 130kg 정도일 때는 직접 승마를 했으며, 자동차 운전과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다고...

 

또 데뷔 당시 자신의 얼굴에 특징이 없다고 생각,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고, 원래 진한 눈썹이었지만 늘 아이 펜슬로 수염과 눈썹을 진하게 화장했다.

 

그런가 하면 평상시에는 화려한 스카프와 챙이 달린 흰색 모자를 착용했고, 무대에서는 항상 하얀 손수건을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그리고 그의 움직임이 없는 무대 연기력은 항상 지적을 받았지만, 움직이지 않는 표정 연기로 많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