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역사 잡학

트로이 전쟁, 트로이 문명이 그리스의 정신을 정복한 전쟁.

화별마 2023. 7. 8. 20:43

트로이 전쟁 이미지

트로이 전쟁, 트로이 문명이 그리스의 정신을 정복한 전쟁.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전쟁은 신들과 영웅들이 개입한, 도시국가 트로이와 그리스를 주축으로 한 연합군 사이의 치열한 전쟁이다.

 

헬라스인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신화를 통해 기록하며 전쟁의 발단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가 그리스인들이 분노해서 벌어진 것이라고 기록했지만,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조직적으로 해적질을 해온 그리스인들의 물질적 욕망이 당시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중계무역으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트로이를 침략해서 전쟁이 벌어졌다며 현실적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여자 때문에 싸웠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도 그 이야기는 단지 전쟁을 하기 위한 명분을 쌓으려는 핑계였다는 것...

 

호메로스 역시 아가멤논의 탐욕으로 그리스가 트로이와 불행한 전쟁을 시작했다고 묘사, 현실적 상황을 아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낭만적인 청년 파리스를 트로이와 동일시하며 트로이인의 심미적인 취향과 인간적인 측면을 더 부각시켰다.

 

이 전쟁에서 헥토르는 아킬레우스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죽였고,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원수를 갚는다며 헥토르를 죽이지만 친구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깨끗하게 씻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 달콤한 잠을 잘 때도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다가 벌떡 일어나 바닷가를 거닐며 슬픔을 삭이려고 하지만 그래도 가라앉지 않으면 전차에 헥토르를 매달고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세 번이나 돈 후에 돌아오곤 한다.

 

아킬레우스가 야만인처럼 잔혹한 행위를 열이틀 동안 반복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아폴론이 신들의 회의에서 마침내 헥토르를 트로이로 보내야 한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마침내 신들은 헥토르의 귀환을 결정했고,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목숨 걸고 적진 한복판에 있는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간다.

 

적군과 아군의 구별을 할 수 없는 어두운 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막사 안으로 들어가 아킬레우스의 두 손을 잡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춘다.

 

깜짝 놀란 아킬레우스에게 프리아모스는 비장하게 말한다. ‘그대 아버지를 생각하라. 아킬레우스. 그대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고대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참 불행한 자다. 쉰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전쟁에 모두 죽었으며 도성과 백성을 지키던 헥토르도 그대 손에 죽었다. 나는 그 아이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많은 몸값을 가지고 왔다.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나를 동정하라. 난 참 끔찍한 짓을 하고 있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모두가 잠든 밤, 아버지와 아들 같은 두 사람은 더이상 적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는 두 명의 인간이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에게 대답한다. ‘노왕께서는 참으로 많은 불행을 참으셨다. 슬픔의 고통은 마음속에 누워있도록 하시고 견디십시오. 가슴속 깊이 애통해하지도 마십시오. 슬퍼해도 어르신의 아들을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법. 도로 살려낼 수는 없습니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가 몸값으로 가져온 물건을 받고 헥토르의 시신을 깨끗하게 수습한 후 수레에 실어놓고 직접 식사를 준비해서 프리아모스를 대접한다.

 

식사를 마친 프리아모스는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열하루의 휴전을 제안하고,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오른손 손목을 꼭 쥐며 제안을 수락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든다. 극적인 적과의 동침... 이 장면은 야수처럼 난폭한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이 수준 높고 유서 깊은 트로이 문명을 만난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물론 트로이 전쟁의 승자는 그리스 연합군이었지만 트로이인들의 수준 높은 문명은 거친 그리스인들을 변모시키고, 잔혹하게 살상을 하던 전사 아킬레우스가 마침내 인간으로서 인격을 갖는 과정은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또 호메로스는 거칠고 난폭한 그리스 전사와 마치 오늘날의 신사 같은 트로이인을 비교하며 트로이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냐고 묻고 있다.

 

로마가 그리스 땅을 점령했지만, 그리스가 로마의 정신을 정복한 것처럼, 그리스는 트로이를 정복하고 파괴했지만, 멸망한 트로이의 문명이 그리스인의 야만적인 정신세계를 인간적 정신세계로 바꾸어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게 했다. 트로이 전쟁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