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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 제도, 세금을 피하려고 로마 제국 말기부터 생겨났다.

화별마 2023. 7. 27. 08:03

신탁제도 이미지

신탁 제도, 세금을 피하려고 로마 제국 말기부터 생겨났다.

 

신탁은 자신의 재산을 제3자에게 맡기고 제3자는 관리인이 되어 재산을 관리하는 계약을 뜻한다. 이 제도는 사람들의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이미 로마 제국 말기부터 등장했다.

 

로마 제국 말기, 황실의 부패와 이민족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로마의 재정은 바닥이 난 상태였다. 따라서 로마는 토지를 대상으로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다과중한 세금 때문에 생존 수단이었던 토지를 포기하는 사람도 늘어났지만, 세금을 피하면서 일부라도 토지를 보존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이 찾아낸 방법은 왕족이나 귀족 그리고 고위 관리처럼 국가에 대한 세금으로부터 면제된 자들에게 자신의 토지를 넘겨주고, 대신 토지의 관리인 자격으로 토지에서 발생하는 생산물 중 일부를 가져갔다.

 

이런 모습의 신탁 제도가 오늘날처럼 제도적 틀을 갖춘 것은, 중세 시대 게르만족이었다. 그들의 관습에는 잘만(Salmann)이라는 소유자로부터 토지 등 재산을 이전받고 이를 관리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었던 것...

 

특히 잘만은 중세 시대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이나 성지 순례를 떠나는 여행객들에게는 정말 유용한 제도였는데, 장기간 고향을 떠나 있어도 재산을 맡겨둘 수 있었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이들이 관리하던 재산을 되돌려 받았다..

 

이런 관습은 중세 영국으로 전해져 유스(Use)라는 제도로 발전, 장거리 여행할 경우 친구나 친척 등 믿을 만한 관리인에게 재산 관리를 의뢰했다관리인은 외형상 재산에 대한 권리를 이전받고 사용과 관리에 필요한 권한을 행사했지만, 재에 대한 실제 권리는 기존 소유자에게 있으므로 이들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만약 장거리 여행에서 돌아온 소유자에게 관리와 재산 반환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런 신뢰가 깨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일부 관리인들이 재산에 대한 권리가 자신에게 이전되었음을 근거로 반환 요청을 거부했던 것...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크고 작은 전쟁에 참여한 영국 군인들 가운데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들은 영국 왕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곳은 영국 왕실 재판소...

 

왕실재판소는 판결을 통해 관리인에게 토지를 되돌려줄 것을 명령했는데, 관리인이 재산 반환을 거부하는 것은, 양심과 윤리적 기준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비록 형식적으로는 관리인에게 권리가 이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 소유자와의 약속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렇게 재산의 관리 수단이었던 유스 제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과 다른 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로마 시대처럼 국왕이나 영주가 부과한 세금을 피할 목적으로 뉴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던 것...

 

그런 폐해로 국가의 재정 수입이 줄어들자 헨리 8세는 1536년에 유스 금지법을 만들지만, 이런 조치로 사람들의 경제적 필요성을 없애지 못했다따라서 사람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편법을 찾아냈고, 믿고 맡긴다는 신탁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1853년 처음으로 신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미국 신탁회사가 생겼다. 이 신탁회사는 주로 사망자의 유족에게 남겨진 재산이나 보험금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주었다..

 

이 신탁 사업은 19세기 중반부터 기업의 비약적 증가와 함께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 이유는 회사로 유입되는 자금과 자산이 불어나면서 신탁을 통한 관리의 필요성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신탁이 새로운 수익이 된다고 알려지자 20세기 초반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의 참여가 본격화되었고 신탁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토지 같은 부동산이 대상이었다면 금전이나 증권을 대상으로 한 신탁도 늘어났다그중에서도 오늘날 금융투자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금전신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