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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문 앞마당. 도대체 누가, 무슨 연유로 그렇게 만들었을까?

화별마 2023. 12. 29. 11:18

창덕궁 인정문 앞마당 이미지

창덕궁 인정문 앞마당. 도대체 누가, 무슨 연유로 그렇게 만들었을까?

 

서울 종로구 위치한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큰 규모로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연못과 정자들이 많아 가장 아름다운 궁궐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아름답고 뛰어난 창덕궁에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인정문 앞마당의 모습... 인정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이 큰 마당은 눈에 금방 들어올 만큼 삐뚤어진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다.

도대체 왜 누가, 무슨 까닭으로 아름다운 궁궐의 앞마당을 이런 모양으로 만든 것일까?

140574칸의 외전과 118칸의 내전을 갖추고 완성된 조선시대 궁궐 창덕궁... 하지만 태종은 계속해서 증축을 명령했고 창덕궁의 증축은 세종이 즉위한 후에도 계속된다.

 

1419년 태종은 창덕궁 인정전으로 들어가려다가 깜짝 놀랄 광경을 목격하는데, 태종을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인정문 앞마당의 모양새...

조선시대 모든 궁궐의 건물과 마당은 반듯한 사각형이었지만, 인정문 앞마당만은 삐뚤어진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앞마당의 모습을 보고 격분한 태종은 당시 공사를 감독했던 책임자 박자청을 잡아들이라고 명해 그를 감옥에 가둔다.

도대체 왜 인정전 건축을 감독했던 박자청은 창덕궁 인정문 앞마당을 그런 모양으로 만든 것일까? 넓은 구릉에 지어진 경복궁과는 달리 북악산 자락에 지어진 창덕궁은 증축할 때마다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야만 했다.

하지만 박자청은 모든 궁궐은 자연과 어울려 조화롭게 지어질 때 가장 아름답다는 그만의 건축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건축 철학과 믿음을 과감히 실행에 옮긴 박자청... 이런 연유로 창덕궁은 경복궁과는 달리 건물들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이 그의 이런 건축 철학을 이해하지 못해 그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박자청의 이런 건축 철학은 현대에 와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그리고 마침내 창덕궁은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증명한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어 낸 건축물 창덕궁... 시대를 앞서갔던 한 소신 있는 건축가의 철학이 남긴 소중한 대한민국의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