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역사 잡학

집시(2), 왜 그들은 정착하지 않고 유랑 생활을 할까?

화별마 2023. 12. 23. 14:48

집시 이미지

집시(2), 왜 그들은 정착하지 않고 유랑 생활을 할까?


전통적으로 방랑 생활을 하고 있는 집시의 생활 단위는 가족이며, 그것이 몇 개 모인 꿈빠니아라는 집단을 갖추어 이동한다.


특히 발칸 일대에서 지중해 연안에 걸친 지역을 여행해 보면 지금도 이곳저곳에 집시 특유의 마차 행렬이나 텐트촌과 마주칠 수 있다.

몇 세기 전 인도를 떠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집시들은 아직까지도 집시 문화를 잃지 않고 있는데,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의식적인 노력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들어가 살게 된 본고장 토박이들의 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사실 17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집시와 유대인은 같은 신세로 가난한 유랑민으로서 정착민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고 질병과 전쟁 등 재앙이 있으면 악연을 뒤집어써야 하는 희생양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17세기 이후 교육을 받으며 정착 사회에 동화했을 뿐만 아니라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앞장서는 역할을 맡았지만, 집시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동화를 거부하고 있다.


집시들은 스스로 롬이라고 부르고 외부인은 가조스(Gadjos)라고 부르며 구분하는데, .전통을 중시하는 집시들은 가조스와의 접촉하면 오염이 된다며 극히 두려워한다.


지난 몇 세기에 걸쳐 집시들은 구걸하거나 도둑질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방랑자 또는 그저 일만 하다가 죽어가는 노예 정도로 취급을 받았다.


분명 유럽 쪽의 규범으로 보면 집시의 행동은 범죄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지만, 그런 행동의 태반은 정착한 유럽인과 이동 생활을 하는 집시 사이에 존재하는 가치 체계와 생활 감정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 때문에 야기되었다.

 

거기에 더해 몇 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가해진 박해의 역사가 그들 간의 틈을 더욱 벌어지게 하기도 했다말하자면 집시의 범죄와 그들 사회의 폐쇄성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가조스에 대한 자기 방어인 셈이기 때문이다.


또 집시들의 좀도둑질은 가난과 궁핍 때문으로 그날 하루를 살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획득해 온다는 행위 자체는 범죄 행위지만, 그들에게는 살기 위한 절박한 생계 수단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유럽에서 발달한 사적 소유 개념과는 달리 각지를 돌아다니는 그들 입장에서는 사회 전체를 공공의 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시들은 필요 이상의 것을 굳이 구하려 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유럽 사회보다도 훨씬 엄격한 척도로 사회 질서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셈...

 

집시들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으나 대부분은 과거의 전통을 이어받은 라우따리(음악가), 아르긴따리(보석상), 볼데니(꽃장수), 그라스타리(말 거래꾼), 우루사리(곰 조련사) 등인데, 일반적으로 집시 사회에서는 라우따리와 아르긴따리가 가장 지위가 높은 직업이다.

오늘날 사회적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예술가나 지식인들을 가리켜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는데, 보헤미안은 보헤미아 지역에 살던 집시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스를 거쳐 동유럽으로 들어갔을 무렵, 집시들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와 영향력 아래에 있던 발칸에서 그 고장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피리 주르나(Zurna)와 타악기 다블(Davul)과 같은 기본적인 편성에 의한 앙상블을 조직해서 악사로 활동했다.

원래 집시들은 음악을 순수하게 오락만을 위해서 하지는 않았는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반드시 그들의 사회에 대한 어떤 분명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에 반해 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가조스를 즐겁게 해 주고 보수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집시들은 의외로 바이올린이나 기타 등 악기다운 악기를 일체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도 농촌에서 방랑하는 집시 중 일부는 반주도 없이 집시 본래의 언어인 로마니로 단선율의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에는 의미 없는 음절을 많이 사용하고 악기 대신 입, , 발을 사용하여 내는 각종 음을 반주로 삼고 있다.

이에 반해 도시에 사는 집시들은 독자적인 언어를 상실하고 바이올린과 침발롬, 클라리넷 등의 서양 악기를 쓰며 노래나 기악도 거의 가조스의 기호에 맞추어 연주하는데, 대개는 레스토랑이나 술집에서 악사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

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인 집시들은 대부분 문맹자이지만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그들이 지닌 비범한 능력을 통해 세계 여러 민족의 다양한 언어와 관습을 초월, 비록 유랑 생활을 하지만,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고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