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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무어인의 건축 기술이 돋보이는 궁전.

화별마 2023. 12. 22. 12:51

알함브라 궁전 사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무어인의 건축 기술이 돋보이는 궁전.

 

스페인의 그라나다는 3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도시로 한 언덕에는 집시들이 살고 있는 사크라몬테 지구, 다른 언덕에는 귀족과 서민들이 살던 알바이신 지구, 그리고 한 언덕에는 왕족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알함브라 궁전이 위치하고 있다.

 

그중에서 알함브라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했던 무어인들이 그라나다에 지은 궁전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세련된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받는 건축물...

 

알함브라 궁전은 처음 지어진 건축물이자 가장 전망 좋은 요새인 알 카사바, 아라베스크 양식의 나사리 궁전,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의 헤네랄리페, 스페인 르네상스 시기의 건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과 산타 마리아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으로 되어 있다.

로마 시대에 조그만 요새가 있었던 이곳은 9세기 그라나다의 이슬람 에미르가 성벽과 토대를 올렸고 1238년 그라나다의 술탄 무함마드 1세가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며 100년에 걸쳐 화려한 궁궐로 변한다.

 

하지만 기독교 국왕 이사벨라 1세가 인근에 신도시 산타페를 건설하고 1492년 이슬람 세력의 항복을 받아낸 후 기독교 세력이 알함브라 궁전을 손에 넣는다.

 

이곳을 빼앗기고 북아프리카로 향했던 그라나다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에미르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이 궁전을 떠나는 것이 더 슬프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이렇게 이교도의 상징이 가득했던 공간이었지만, 스페인 국왕이나 귀족들은 이곳을 궁궐로 사용하길 원했고 이사벨라 1세의 손자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이 궁전에서 거주하려고 새로운 카를로스 5세 궁전을 알함브라 궁전 중심에 세운다.

 

그는 이교도의 상징을 지우기 위해 궁궐의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축하고, 성당에 딸린 수도원도 짓고, 궁궐의 일부도 기독교식으로 바꾸어버린다.

 

그 후 알함브라 궁전을 왕궁으로 사용하려던 계획이 흐지부지되어 버렸고 18세기 초 펠리페 5세가 며칠 들렀던 것이 마지막 방문이었다.

 

그리고 1812년 프랑스의 세바스티앵에 의해서 탑들이 철거되었고 1821년에는 지진피해까지 입으면서 지역 총독이 알함브라 궁전 맞은편 헤네랄리페에서 거주, 궁전이 완전 방치되어 집시와 강도들의 무단거주지가 된다.

이 궁전이 다시 알려진 것은, 미국인 작가이자 외교관 워싱턴 어빙이 1829알함브라의 이야기를 출판하면서...

 

1828년부터 호세 콘트레라스에 의해 원형을 찾기 위한 보수 공사가 시작되어 1830년 페르난도 7세의 기부로 지속적인 공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1847년 호세가 사망했으나 그 아들이 물려받아 계속 공사해서 1870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1984년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