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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냉면, 기방문화에서 비롯된 야참 음식.

화별마 2023. 7. 24. 07:24

진주 냉면 사진

진주냉면, 기방문화에서 비롯된 야참 음식.

 

요즘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철이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시원한 냉면... 손이 달라붙을 정도로 차가운 냉면 그릇에 살짝 살얼음이 보이는 시원한 냉면이 눈앞에 놓이면 그 어떤 무더위도 말끔히 가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냉면은 여름에 먹던 음식이 아니라 겨울철에 해 먹던 음식... 뜨거운 것은 열로, 차가운 것은 냉으로 다스리던 以熱治熱(이열치열)’, ‘以冷治冷(이냉치냉)’ 문화의 하나로 엄동설한에 몸을 떨면서 먹던 음식이 바로 냉면이다.

 

우리나라 문헌상 최초로 냉면이 등장한 것은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 겨울철음식으로 메밀국수에 무김치와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高麗圖經(고려도경)’을 보면, 고려가 중국으로부터 국수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중국으로부터 배운 국수의 재료는 밀가루였지만 귀한 밀가루보다 메밀가루를 이용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메밀국수는 이미 고려 시대부터 즐겨 먹던 음식...

 

광복되기 전, 평안도나 경상도 산간지방에서는 메밀국수를 즐겨 먹었는데, 이 메밀국수를 차게 해서 겨울에 먹던 음식이 바로 냉면이다. 그리고 냉면 하면 우리는 평양냉면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몇 해 전, 음식을 비평하시던 분이 우연히 1994년도에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의 민속전통이라는 책을 구입했는데, 그 책 속에 냉면 중에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다라고 쓰여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글을 본 적 있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북쪽의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잘 알고 있으면서 정작 남쪽의 진주냉면을 모르고 있었다는 당혹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모르긴 해도 진주냉면은 이미 진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진주 시내에 진주냉면 집이 서너 군데 있었다고 전한다.

 

진주냉면을 오래 연구하신 분에 의하면 진주냉면은 기방문화에서 비롯된 음식이라고 한다. 당시 진주에는 북쪽의 평양기생, 남쪽의 진주기생이라고 불릴 만큼 기생문화가 발달해 있었다고...

 

그러나 미색과 재색을 두루 겸비한 관아의 진주 기생과 숙수들은 조선이 나라를 빼앗기면서 권번과 요정으로 진출해 영업을 계속했는데, 당시 기방을 찾았던 돈 많은 일본 사람들이나 한국인 지주 등이 기생들과 야참으로 즐겨 먹었던 음식이 진주냉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1960년대 이전에는 요정뿐만 아니라 진주의 부잣집에서도 냉면을 배달해서 먹어, 진주냉면 집에는 배달을 전문적으로 하는 남자 하인들이 서너 명씩 있었을 정도라고...

 

그런 진주냉면의 특징은 순 메밀에 고구마 전분을 반죽해서 면발을 뽑고, 쇠고기의 사태 살이나 정강이 살을 푹 고아 기름을 건져 육수를 맑게 만든 후, 죽방멸치와 바지락, 마른 홍합, 마른 명태, 표고버섯으로 해물 장국을 만들어 맛을 냈다.

 

그리고 배추김치를 채 썰어 진주지방에서 제사음식으로 만들어 먹던 쇠고기 육전과 함께 올리면서 고명으로 배와 오이를 채 썰어 얹고, 길게 썬 쇠고기, 표고버섯, 석이버섯, 달걀 지단, 실백과 깨소금을 얹어서 내놓았다.

 

가끔 방북 행사를 할 때면 TV 화면을 가득 채우며 많은 사람들이 평양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장면을 단골로 보여주곤 했다. 앞으로는 남쪽을 찾아온 북한 사람들에게도 진주냉면의 독특한 맛을 보여주고 그 전통을 살려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