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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와 미국은 와인 쟁탈전을 했다.

화별마 2023. 7. 25. 10:06

프랑스 와인 이미지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와 미국은 와인 쟁탈전을 했다.

 

194554일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오스트리아 국경 인근에서 프랑스 제2기 기갑사단과 미국의 제101 공수사단이 베르그호프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기 시작한다.

 

베르그호프는 오버잘츠베르크 산 정상에 있는 히틀러의 별장이 있던 곳... 며칠 전 히틀러는 러시아 침공이 실패하자 베를린 벙커에서 자살한 상태였고, 군 장성들도 이미 도주해서 도시는 텅 빈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두 나라 군대가 마치 경주하듯 베르그호프 점령에 나선 것은, 그곳에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약탈한 최고급 와인 수십만 병과 귀한 예술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도착한 프랑스 제2 기갑 사단장 필립 르클레르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히틀러, 당신 이름으로 벌어질 뻔한 또 다른 범죄 사건을 우리가 미리 막은 것뿐이오.’

 

하지만 미국 제101 공수 사단장은 화가 나서 당신들은 우리의 휘하에 있고, 아직도 우리의 지휘하에 있다며 미국의 허락 없이 프랑스가 베르그호프에 먼저 도착, 최고급 와인 2만 병을 빼돌린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전쟁터에서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아군이었지만, 최고가 와인을 앞에 두고는 서로가 경쟁자일 뿐이었다.

 

며칠 후, 미군과 프랑스군은 또다시 와인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데, 이번에는 오스트리아 인근에 있는 해발 1,800m의 칼슈타인 산 가파른 절벽 정상에 있던 히틀러 은신처 독수리 요새였다.

 

이곳에는 히틀러가 프랑스에서 약탈한 최고급 와인 50만 명이 있었는데 이 와인도 결국 프랑스가 모두 차지한다. 이 요새의 지하 동굴에는 지금 기준으로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보르도와 보르고뉴 등에서 빼앗은 명품 와인이 50만 명이나 꽉 차 있던 것...

 

프랑스가 미군과의 와인 쟁탈경쟁에서 이길 수 있던 것은 당시 프랑스의 전쟁 영웅 샤를 드골을 비롯한 프랑스 사람들의 지극한 와인 사랑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은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곳곳에 숨겨둔 프랑스 고급 와인을 찾아오기 위한 특수부대를 구성했다.

 

그 특수부대는 베르그호프에 잠입해서 와인 숨긴 것을 찾아냈고, 히틀러의 독수리 요새에서도 프랑스군이 미군에 앞서 명품 와인 약 50만 병을 찾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39년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념이 충돌한 전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프랑스 명품 와인이 있었다. 프랑스는 나라는 빼앗겼지만, 그들의 자존심인 와인을 잃지 않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했다.

 

193991,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독일 히틀러가 마침내 폴란드 국경을 넘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는데, 전쟁이 코앞이었지만 프랑스는 군인들까지 동원, 서둘러 포도 수확을 한다.

 

하지만 독일의 기갑부대는 프랑스 국경을 넘자마자 바로 와인 약탈을 시작한다. 그러나 프랑스 와인 생산자들은 이미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지하 와인 저장고나 자신들의 집에 또 다른 벽을 쌓아 소중한 와인을 숨겼다.

 

독일군도 만만치 않아 독일의 와인 수입상으로 구성된 조직까지 만들어 본격적인 약탈을 한다.

 

당시 파리 센강 근처에는 1582년에 문을 연 4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급 레스토랑 라투르다르장이 있었는데, 이 레스토랑은 지하에 보관하던 명품 와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장고 한쪽에 벽을 쌓아 막은 뒤 특급 와인 2만 병을 숨기고 남은 8만 병은 노출시켜 고급 와일을 지켜냈다.

 

이 레스토랑은 2009127, 또 한 번 뉴스에 등장합니다. 자신들이 수백 년간 보유하고 있던 와인 45만 명 중 18천여 병을 일반인에게 경매로 붙인 것... 이틀간 진행된 이 경매에서 1788년 산 꼬냑 클로 디 그리피에’ 3병이 무려 1억 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 꼬냑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거치면서 숙성된 꼬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