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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행복한 왕과 외로운 왕은?

화별마 2023. 11. 8. 09:41

선릉 이미지

죽어서도 행복한 왕과 외로운 왕은?

 

서오릉의 중심에는 숙종의 무덤인 명릉이 자리 잡고 있는데, 주변에 10살 때 혼인했던 조강지처 인경왕후와 첫 번째 계비였던 인현왕후 그리고 두 번째 계비 인원왕후의 무덤도 있다.

 

이곳에 숙종과 인현왕후는 나란히 묻혀 있고, 숙종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인원왕후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무덤 왼쪽의 높은 언덕에서 다소 초라한 모습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숙종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장희빈도 1970, 사후 270년 만에 숙종이 있는 이곳으로 왔다.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문형리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던 장희빈의 무덤을 숙종과 연고가 깊은 서오릉 경역으로 옮겨왔으나 비극적 최후만큼이나 봉분과 곡장, 석물 모두 초라하고 옹색하게 보인다.

 

어찌 되었든 장희빈이 숙종 곁으로 옮겨와서 숙종은 죽은 뒤에도 3명의 정비와 한 명의 후궁을 거느린 여복이 많은 왕이 되었다.

 

그러나 숙종과는 반대로, 생전에는 3명의 왕비가 있었지만 죽어서는 한 명의 왕비와도 함께 하지 못한 외로운 왕이 바로 중종이다.

 

중종의 무덤은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정릉으로 지하철역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아버지 성종의 선릉과 같은 경역에 있어 선정릉이라고 부른다.

 

생전에 중종은 3명의 왕비를 두었는데, 첫 왕비 단경왕후 신 씨는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폐위되어 사후에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계비로 맞은 장경왕후 윤 씨와 중종은 서삼릉의 희릉(禧陵)에 함께 묻혀 있었다.

 

그런데 명종 때 수렴청정으로 명성을 떨친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가 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문정왕후는 자신이 죽은 뒤에 중종 곁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이미 중종의 무덤 옆에는 인종의 생모이자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가 지키고 있었다.

 

자신이 죽어 중종 곁에 묻히려면 장경왕후로부터 중종을 떼놓아야 했는데, 1542년 문정왕후는 봉은사 주지였던 보우와 논의하여 전격적으로 서삼릉에 있는 중종의 왕릉을 성종의 무덤이 있는 선릉 부근으로 옮긴다.

 

이 상황을 지하에서 지켜보고 있던 중종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데 새로 옮긴 중종의 무덤 정릉은 명당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잦아 홍수 때는 재실까지 물이 차기도 했다.

 

결국, 문정왕후는 중종 곁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무덤은 지금의 태릉에 조성되었다.

 

그리고 중종의 첫 왕비 단경왕후 신 씨의 무덤은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온릉(溫陵)이다.

 

결국, 중종은 3명의 왕비 중 누구와도 함께 하지 못하는 외로움과 비운의 왕이 되었다. 그나마 아버지 성종이 근처에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받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