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역사 잡학

[이스라엘 역사 1]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일까?

화별마 2023. 10. 17. 16:31

가나안 이미지

[이스라엘 역사 1]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일까?

 

폭탄 테러, 보복,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반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예루살렘을 둘러싼 끝없는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왜 목숨 건 땅 빼앗기를 종식하지 못하는 걸까?

 

현재 이스라엘 지역의 고대 이름은 가나안... 4천 년 전,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 아브라함이 이곳에 정착한다.

 

그러나 가나안 지역에 엄청난 기근이 닥치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과 그의 12명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은 이집트 나일강 하류로 이주한다.

 

이집트의 노예가 된 유대인들이 400년간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모세가 유대인을 끌고 이집트를 탈출, 40년간 광야에서 방랑한다.

 

그들은 광야에서 한 민족을 이루게 되고 10 계명을 포함한 토라를 받게 되는데, 토라는 구약성서의 첫 5편으로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문서...


그 후 2세기 동안 유대민족은 이스라엘 땅 대부분을 차지하고 기원전 약 120년경에는 이스라엘의 첫째 왕 사울이 그들을 괴롭히던 민족 블레셋을 물리친다그리고 사울의 후계자 다윗 왕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면서 이스라엘을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는다.

 

또 그는 이스라엘의 12개 지파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하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면서 군주제를 실시한다.


기원전 965년경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아들 솔로몬은 기원전 957년 고대 유대교의 중심이 되는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는데, 유대인에게는 유대교의 원천으로, 훗날 기독교도에게는 예수가 부활한 성지로, 나중에는 무함마드가 승천해서 신을 만나는 성지가 된다.

 

이런 배경 때문에 예루살렘은 정치적, 종교적으로 엄청 민감한 지역이 되어 버린 것...

 

기원전 930년경 솔로몬 왕이 죽자 나라는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으로 갈라져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은 이스라엘 왕국은 200년 이상, 예루살렘 중심의 유다 왕국은 400년간 지속된다.

 

하지만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함락되고, 100여 년 후인 기원전 586년에는 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정복하면서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대부분의 주민을 내쫓는다.

 

바빌로니아 왕국은 유다 왕국의 백성들을 본국으로 끌고 가서 노예로 삼았는데, 사실상 이때부터 유다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유대인으로 불린다.


기원전 538년경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는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1차 귀환시키는데, 이들을 이끈 사람은 다윗의 후손인 수룹바벨...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기 전, 율법학자 에스라의 주도로 유대인의 2차 귀환이 이루어지고 이스라엘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제2 성전을 건축하며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

 

그러나 기원전 332년경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반도의 도시 국가인 헬라지역을 통일했고, 이스라엘 땅 역시 정복한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를 받는데, 이들은 헬라 문화에 흡수되는 것을 싫어했고, 유대교 행사 금지령을 받아들일 수 없어 기원전 166년경, 반란을 일으킨다.

 

이렇게 유대인 스스로 세운 하스몬 왕조의 주도하에 승리하자, 셀레우코스 왕조는 결국, 유대인의 자치권을 되돌려준다그리고 기원전 129년 셀레우코스 왕국이 몰락하며 유대인은 독립, 그 후 약 80년 동안 하스몬 왕조를 이어간다.

 

하지만 기원전 63, 이스라엘 땅은 로마 제국에 정복되고, 하스몬 왕 힐카누스 2세에게 제한적 왕권만 주자 많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로마군에 패배하면서 하스몬 왕조가 끝나고 로마 제국의 한 주가 된다.


기원전 37, 로마는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하고 제한이 없는 자치권을 주면서 헤롯은 로마 제국 동부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