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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부의 난, 일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화별마 2023. 12. 6. 11:38

정중부 이미지

정중부의 난, 일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고려사회는 문벌귀족사회로 법제적으론 문반과 무반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양반사회였으나 우문정책(右文政策)으로 숭문경무(崇文經武) 풍조가 만연해서 언젠가는 폭발할 갈등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문신 귀족은 정치권력을 전부 독점하고 심지어는 군사 지휘권까지 장악해서 무신은 문신 귀족의 호위병으로 전락한 상태...

 

1170년 고려 의종 248월 국왕 일행이 화평재(和平齋)에서 연회를 베풀고 문신들을 불러 함께 놀았는데, 당시 호위하던 군사들은 굶주린 상태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은밀하게 이의방과 이고가 정중부에게 거사를 요청하는데, 왕과 시를 지으며 놀고 있는 문관들 중에는 26년 전 나례(儺禮) 의식 때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워버린 김부식의 아들 승선 김돈중(金敦中)도 끼어 있었다.

 

그때까지 김돈중에게 묵은 감정이 남아 있던 정중부는 그의 모습을 보자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으나 왕이 만약 여기를 떠나 환궁하면 다음 기회를 엿보고 그러지 않고 보현원(普賢院)으로 가면 거사를 실행하자고 한다.

 

마침 의종은 환궁하지 않고 보현원으로 가서 다음 날도 문신들을 불러 술을 마셨고, 술기운이 오를 무렵 주변을 돌아보니 호위병들의 사기가 죽어 있는 듯해서 다섯 사람이 손으로 무예를 겨루는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戱)를 시킨다.

 

그때 문신 한뢰(韓賴)가 수박희를 하다가 뒤로 물러서는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후려쳤는데, 그 모습을 보고 국왕과 신하들은 손뼉을 치면서 비웃는다.

 

그러자 상장군 정중부가 성난 목소리로 대장군 이소응은 무관이지만 3품의 벼슬인데, 어찌 이처럼 심한 모욕을 주느냐며 한뢰를 향해 소리친다.

 

그 후 저녁 무렵이 되자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 쿠데타 3인방은 문관(文冠)을 쓴 놈은 비록 서리(胥吏)라도 모조리 죽여 씨를 남기지 말라며 대대적인 문신 살육 사건을 일으킨다.

 

며칠 후 정중부는 의종을 폐하고 아우 익양공(翼陽公) 호()를 세우니 그가 고려 제19대 왕인 명종(明宗)...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정중부의 난 또는 무신정변, 경인란(庚寅亂)이라고 부르는데, 이 내용은 고려사(高麗史)’ 41 반역 조 정중부 열전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