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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제도,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화별마 2023. 10. 2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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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제도,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 오랫동안 우리나라 주거생활 문화의 하나로 이어진 전통이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이렇게 독특한 주택제도가 생겨났을까?

 

사실 전세제도는 고려 시대 전당(典當) 제도가 조선으로 이어졌고, 이 제도가 주택을 대상으로 하면서 정착된 관행으로 보고 있다.

 

전당은 논밭을 제공하고 돈을 빌리는 제도였는데, 조선 시대로 들어오며 이 제도가 주택까지 확대, 적용되면서 전세제도로 발전한 것...

 

조선은 임진 전쟁과 정묘,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경제적,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특히 18세기 이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한양으로 올라오면서 상공업의 발달로 예전에 없던 다양한 직종이 생겨났다.

 

또 벼농사도 이앙법의 보급으로 광작이 유행하면서 소작지를 잃은 농민들이 일거리를 찾아 혹은 양반 신분을 돈 주고 산 부유한 농민들이 신분 세탁을 위해 한양으로 몰려들었던 것...

 

이런 상황이 15세기 초 10~15만여 명이던 한양의 인구가 18세기에는 두 배 가까이 늘어 20~30만여 명이 된다1785년 무렵 영국에서 인구 5만 명을 넘긴 도시가 런던 등 4곳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면 엄청난 인구 증가였다.

 

따라서 한양의 인구 증가는 심각한 주택난을 초래했는데, 돈 많은 사람들은 집을 사거나 빈터를 사들여 집을 지었다하지만 일을 찾기 위해 상경한 임시 노동자나 장기간 직업군인으로 근무해야 하는 장병들은 집을 빌려야 했다.

 

이들은 집 전체를 빌리거나 사랑방이나 행랑 등 일부만 빌리기도 했는데, 이때 세매(貰賣)라고 해서 집값의 50~80%에 해당하는 목돈을 주고 집을 빌렸다.

 

세매는 세를 주고 판다는 뜻으로 집을 팔기는 싫지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돈을 받고 사용하지 않는 집을 빌려준 것... 또 이때 내는 돈을 세전이라고 불렀는데 일종의 보증금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들이 돈은 필요한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집을 차마 팔 수 없어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세전을 받고 집을 내주면서 전세제도가 유행했다.

 

당시 전세살이를 한 사람 중에는 퇴계 이황도 있었는데, 지방에 살다가 관직 생활을 하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오면 집을 구해야 했다그런가 하면 성종 때 관직 생활을 하기 위해 올라왔던 김종직도 여러 번 이사를 하며 셋방살이를 했다고...

 

그렇다면 조선 시대에는 주택 매매나 전세 정보를 어떻게 얻었을까? 당시에도 중개인을 통해서 임대가 이루어졌는데, 이런 사람들을 집주름 또는 가쾌라고 불렀다집주름이라는 말 속에는 내가 한양의 집들을 주름잡고 있어!’라는 의미가 있다고...

 

이들은 지역 주택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 18세기에는 주로 훈련도감의 포수들이 집주름으로 활동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