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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 롤, 전투에서 탄약 대신 떨어진 초콜릿 사탕.

화별마 2023. 7. 1. 10:18

투시 롤 이미지

 

투시 롤, 전투에서 탄약 대신 떨어진 초콜릿 사탕.

 

한국전쟁 중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서 북한의 임시 수도였던 강계를 점령하려다 중공군 7개 사단에 포위된 미국 제1해병사단이 함흥까지 퇴각한 전투...

 

1983, 이때 살아남은 병사들이 초신 퓨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초신(Chosin)은 장진호의 일본식 표기이고 퓨(Few)는 생존자가 많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특히 이 모임이 있을 때마다 투시 롤(Toosie Rolls)이라는 초콜릿 사탕을 반드시 준비하는데, 장진호 전투와 참전 노병들, 그리고 이 초콜릿 사탕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중공군과 치열하게 교전 중이던 제1해병사단 예하의 박격포 부대 통신병은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을 쳤다. ‘지금 투시 롤이 바닥나기 직전이다. 더 이상 남은 초콜릿 사탕이 없다. 긴급 지원 바란다.’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긴급하게 초콜릿을 지원해 달라고 소리를 지른 것...

 

무전을 받은 후방 통신부대는, 중공군에 포위되어 악전고투하는 상황에서 긴급하게 요청한 것이 지원 폭격이나 탄약, 의약품도 아닌 초콜릿 사탕이라는 사실에 황당해했다.

 

무전 내용이 황당했지만 일단 전투 현장의 요구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공군 수송기들이 수백 상자의 초콜릿 사탕을 싣고 출격했고, 장진호 주변을 에워싼 중공군의 대공사격을 피해 낙하산으로 초콜릿 사탕을 투하했다.

 

박격포 부대원들이 서둘러 낙하산으로 투하한 보급품을 수거해서 상자를 여는 순간 해병대원들 역시 기가 막히기는 마찬가지.. 뜬금없이 상자 속에 초콜릿 사탕이 잔뜩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의사소통이 문제였는데, 박격포 부대 통신병이 요청한 것은 분명 투시 롤이라는 초콜릿 사탕이었지만 생김새가 포탄을 닮았기 때문에 투시 롤은 해병대원들 사이에서는 박격포 포탄이라는 의미의 은어로 쓰였다. 따라서 통신병이 요청한 것은 진짜 초콜릿 사탕이 아닌 박격포 포탄이지만 중공군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탄약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도청당할까 우려한 나머지 무전병이 은어를 쓴 것... 하지만 무전을 받은 후방부대 통신병은 이 은어를 알지 못했고, 무전 그대로 많은 초콜릿 사탕을 공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제1해병사단 박격포 부대원들은 엉뚱하게 보급받은 초콜릿 사탕이 단순한 군것질거리가 아니라 포탄보다도 유용하게 쓰이고, 실제로 중공군의 포위에서 해병대를 구하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장진호가 위치한 개마고원은 한국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로,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에는 유독 강추위가 몰아쳐 밤이면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기온에다 해발 2,000미터의 산이 이어지는 고지대에서 협곡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인적이었다. 따라서 전쟁사를 보면 2차 세계대전 때 동유럽의 모스크바 전투, 서유럽의 벌지 전투와 함께 장진호 전투를 현대전에서 가장 처절했던 3대 동계작전으로 언급한다.

 

장진호 전투에서 추위는 적군보다 무서운 존재... 기관총은 그대로 놓아두면 얼어붙어 쏠 수 없었기 때문에 적군이 있건 없건 주기적으로 사격을 해야 했고, 이 때문에 부대 위치가 노출되어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으며, 소총은 기름이 얼어붙어 제대로 손질조차 할 수 없는 상황... 거기에 더해 미군이나 중공군 절반 이상이 심한 동상에 걸렸고 공중으로 투하되는 보급품도 얼어붙은 땅에 부딪치면서 깨져 탄약과 식료품 모두 25% 정도만 사용 가능했다.

 

또 해병대원들은 주로 C-레이션 통조림을 먹었는데, 중공군의 기습공격 탓에 식량을 녹여 먹을 수도 없었고. 제대로 조리되지 않은 식량과 얼어붙은 음식을 먹어서 심한 장염과 설사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적군에게 포위된 해병대원들은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는데, 초콜릿 사탕이 공수되자 장진호에서 철수할 때까지 하루 세끼를 초콜릿 사탕으로 버틸 수 있었다.

 

초콜릿은 고열량 에너지원이긴 하지만, 맛이 있어 순식간에 다 먹어치운다. 하지만 투시 롤은 캐러멜 사탕에 초콜릿을 입혀서 혹독한 추위에서는 딱딱하게 얼어붙어 급하게 먹을 수가 없어 천천히 녹여 먹어야 했다. 이렇게 투시 롤은 장진호 전투에서 전투식량으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장진호 전투의 초콜릿 사탕은 믿기 힘든 해프닝이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싸웠던 이름 없는 해병대원들의 무용담이 함께 녹아 있는 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