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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왜 누가 무슨 목적으로 도려냈을까?

화별마 2023. 10. 29. 07:13

일성록 사진

일성록, 왜 누가 무슨 목적으로 도려냈을까?

 

일성록은 국정 참고용 기록물로 왕실의 비사로 인식해서 보관에 중점을 두었던 조선왕조실록과는 성격이 달랐다따라서 일성록은 국가의 주요 정책이나 전례의 고증이 필요한 경우에는 열람을 허용했다.

 

그런 기록물의 성격 차이로 19세기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일성록은 수난을 겪었는데, 최고 집권자 쪽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불리한 기록을 도려내는 사건이 벌어진 것...

 

일성록에서 오려진 부분은 정조 10121일부터, 정조 23115일까지 총 635곳이다그렇다면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일성록을 도려낸 것일까?

 

이 사건은 19세기 세도정치 시기에 왕을 마음대로 즉위시킨 외척 세도 가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당시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 김 씨는 헌종이 세상을 뜨자 왕을 임명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정점에 있었던 순원왕후는 헌종의 후계자로 강화에 귀양을 가 있던 이원범(철종)을 지명한다.

 

이원범은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후손으로 은언군은 정조 때 역모 사건으로 강화도로 귀양을 갔다가 천주교 박해 사건에 연루되어 죽었다.

 

또 이원범은 은언군의 아들 전계군의 셋째 아들로 역모죄로 강화도에 귀양을 왔던 선대를 따라 조용히 농사지으며 살아가던 평범한 인물... 그런 이원범에게 갑자기 의장 행렬과 함께 왕위에 오르라는 조정의 분부가 떨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19세기 후반, 권위가 추락한 조선왕조의 단면을 보여주었지만, 어찌되었든 이원범은 얼떨결에 25대 철종으로 즉위한다.

 

평범하게 농사를 짓다가 하루아침에 왕이 된 상황, 이 모습은 어쩌면 무너져가는 조선왕조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원범의 선대가 역적이었다는 점은 철종을 왕으로 만든 순원왕후와 안동 김 씨 세력에게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었다그래서 급기야는 일성록의 정조 시대 기록 중 이원범의 선대와 관련된 기록을 칼로 삭제하기에 이른 것...

 

삭제된 날짜를 철종실록과 비교해보면 대부분 철종의 선대 은언군이나 은언군의 아들로 정조 즉위 초부터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고초를 당했던 상계군에 관한 기록이었다.

 

이것을 보면 삭제의 정치적 배경에는 순원왕후를 중심으로 한 안동 김 씨 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일성록 원본에는 칼로 잘려나간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일성록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