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제품 잡학

사라능단, 중종도 막지 못한 조선의 사치 패션.

화별마 2023. 6. 30. 07:16

사라능단 이미지

 

사라능단, 중종도 막지 못한 조선의 사치 패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 초기부터 사치풍조를 막기 위해 사라능단(紗羅綾緞)으로 옷을 지어 입는 것을 금지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또 세종실록에 의하면 딸을 시집보낼 때, 이불과 요에는 능금 단자를, 신부의 복식에는 사라능단(紗羅綾緞)을 쓰지 말라고 한다.

 

이런 고급 직물들은 주로 중국에서 만들어 조선으로 수출했는데, 이를 구하기가 어려워 혼인 시기를 놓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라능단(紗羅綾緞)은 고급 견직물을 대표하는 옷감의 이름으로 사()와 라()는 망사와 같이 가볍고 부드러운 직물이고, ()과 단()은 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직물... 이런 직물들은 조선의 전통 베틀로는 짤 수가 없는 고급 비단들...

 

하지만 그런 금지에도 불구하고 사라능단(紗羅綾緞)을 수입하기 위해 조선과 명나라 간 사행 무역이 활발했는데, 1520년대로 들어서며 은을 결제 수단으로 해서 명나라의 사라능단(紗羅綾緞) 같은 사치품 수입이 급증한다.

 

당시 조선의 함경도 단천에서는 은이 대량으로 생산되었지만, 중국의 사라능단(紗羅綾緞) 같은 사치품을 수입하는 바람에 은이 귀해져 한양에서는 은값이 10배나 오르기도 했다. 이같이 조선에서 은값이 폭등하자 상인들은 은이 더 필요하게 되었고, 중앙 정부 혹은 지방 관아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채굴하는 잠채(潛採)까지 성행한다.

 

이렇게 불법으로 잠채가 성행하자 조선 명종 때는 명나라와 무역을 금지하자는 논의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문제를 여러 차례 검토했지만, 영의정 등 고위층부터 사라능단(紗羅綾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바람에 금지할 수가 없었다고...

 

신하들은 당상관 이상이 사라능단을 입는 것은 조종조의 구법(舊法)이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재상들이 사라능단을 입어온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금할 수 없다고 반대를 했기 때문이다.

 

앞서 중종 때도, 연산군 시대 이후 부녀자들이 사라능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등 사치풍조가 심각하다며 중국에서 들여오지 말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종실(宗室)과 재상 그리고 부녀들의 겉옷은 모두 아청색(鴉靑色) 비단으로 지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슬쩍 넘어간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마저도 연산군 때 행한 많은 사치풍조를 적폐로 단죄했지만, 의복을 만드는 사치스러운 고급 비단만큼은 어찌하질 못했다. 그 당시에도 고위층 양반들은 고급 비단인 사라능단(紗羅綾緞)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던 모양... 당시에는 그렇게 입는 것이 유행이었는지 모르지만, 사치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 특히 여성이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의지는 막을 수가 없어 부녀자들이 비단옷을 입느라 집안이 파산해도 그만두지 않는다고 조선왕조실록에는 한탄하고 있다.

 

언젠가 영부인의 옷값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던 적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는 어찌 그리 닮아가는지... 오호, 통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