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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12월 그림 속에 담긴 유명한 일본 서예가의 일화.

화별마 2023. 7. 3. 10:12

화투 이미지

화투, 12월 그림 속에 담긴 유명한 일본 서예가의 일화.

 

일본의 닌텐도 회사의 시작은 비디오게임이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화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화투는 명절이면 친척들끼리 둘러앉아 치기도 했고, 지금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도 화투 게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드라마나 영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화투의 원형은 일본의 카드게임 하나후다(花札)... 조선 말기에 조선을 왕래하던 일본 대마도 상인들로부터 화투가 전해지면서 이후 빠르게 전파가 되어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조금 변형되어 자리를 잡는다.

 

16세기 포르투갈과 무역을 하면서 트럼프 카드가 일본에 전해지는데, 그 후 일본에서는 트럼프 카드를 이용한 도박이 성행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사행성을 이유로 트럼프 카드를 금지시켰는데, 사람들은 금지령을 피해 카드의 모양을 변형시키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후다의 원형이 완성된다.

 

하나후다를 오늘날과 유사하게 만들어 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공예가 출신으로 그림 실력과 손재주가 뛰어났던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 그는 카드놀이의 사업성을 보고 1889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라는 회사를 세우고 직접 그림을 그린 하나후다를 만들어 판매를 한다.

 

곳파이는 카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카르타(carta)에서 파생된 말 가루타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 이렇게 마리오와 포켓몬스터 등으로 유명한 게임 회사 닌텐도가 카드게임으로 출발을 했다.

 

화투는 1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카드가 각 4장씩 총 4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카드에는 해당하는 달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각각의 스토리도 존재한다. 화투의 달별 명칭을 살펴보면 1월은 송학(), 2월은 매화(매조), 3월은 벚꽃, 4월은 흑싸리(등나무), 5월은 난초, 6월은 모란, 7월이 홍싸리, 8월은 공산명월, 9월은 국화, 10월은 단풍, 11월은 오동, 12월은 비().

 

먼저 1월을 상징하는 카드를 보면 송학이라는 이름에 맞게 소나무가 그려져 있고, 학이 그려진 카드도 있다. 그런데 화투를 해 본 사람은, 우리나라의 송학 화투패에는 검은색 산만 보이고 소나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일본의 하나후다를 보면 초록색으로 그려진 소나무가 보이는데, 일본에서는 새해가 되면 대나무와 소나무로 만든 카도마츠라는 장식을 집 앞에 새워두는 문화가 있어 1월을 상징하는 카드에 소나무가 그려진 것...

 

그러나 하나후다가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카드 인쇄를 쉽게 하려고 혹은 짙은 왜색을 지운다는 등의 이유로 형태가 조금씩 바뀌면서 송학 화투패를 검은색 산처럼 만들었다. 4월을 상징하는 흑싸리는 검은색의 이상하게 생긴 풀이 위로 자란 그림이 그려 있지만 원래 그림은 초록색 잎사귀를 늘어뜨린 등나무였다.

 

그런가 하면 12월을 상징하는 비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담겨 있는데, 비 카드에는 우산을 쓴 남자와 개구리가 보인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일본의 유명 서예가 오너 도후(小野道風)로 그는 어려서부터 서예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오너 도후가 아무리 글씨를 잘 써도 스승이 그를 칭찬해 주지 않자, 칭찬에 인색한 스승과 쉬이 늘지 않는 자신의 실력에 지쳐 붓을 꺾고 떠나기로 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스승의 곁을 떠나 집으로 향하던 그는, 불어난 물에 휩쓸릴 듯한 개구리를 발견하는데, 개구리는 버드나무 가지 위로 뛰어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계속해서 실패하다가 마침내 가지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을 본 오노 도후는 쉽게 포기해 버린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돌아가 서예에 매진,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명필이 되어 독자적인 서체를 완성한다. 이처럼 한 장의 화투에도 교훈적인 삶이 그려져 있다.

 

화투에는 일본 문화와 이야기가 녹여 담아낸 그들의 전통 놀이...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일본에서 하나후다를 즐기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고... 오히려 일제강점기 이후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외색을 지우려 노력했던 우리나라에서는 화투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놀이로 존재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렇게 문화는 인위적으로 없앨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