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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북전쟁. 정말 노예 해방 전쟁이었을까?

화별마 2023. 11. 2. 09:49

남북전쟁 이미지

미국의 남북전쟁, 정말 노예 해방 전쟁이었을까?

 

서부 개척의 결과로 미국은 넓은 땅과 자원을 갖게 되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남북이 나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상공업이 발달했던 북부와는 달리 남부에서는 흑인 노예들을 동원해서 목화를 대규모로 재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50년 힘들게 북부로 도망간 노예들을 남부의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는 법이 통과되면서 노예제 문제가 엄청난 이슈로 떠오른다.

 

그 후 링컨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의 일곱 주는 연방에서 탈퇴해서 별도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전쟁(1861~1865)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남북전쟁은 미합중국 북부 연방과 미 연합국 남부 연맹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쟁으로, 앵글로아메리카 최후의 전쟁으로 역대 미국인이 가장 많이 죽은 전쟁이다.

 

또 양 군의 군복 색상을 비유해서 푸른 외투 연방군 대 회색 외투 남군의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훗날 남북전쟁으로 링컨은 전 세계에 신화적 인물로 부상했지만, 그 역시 백인과 흑인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인물...

 

사실 그에게는 노예 해방보다는 연방을 예전처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따라서 노예를 해방하지 않고 예전처럼 연방을 지킬 수 있다면 링컨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1863년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것은, 그의 생각이 바뀌어서가 아닌 남북전쟁에서 전쟁의 양상이 북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선언한 노예 해방이라는 거창한 명분은 북부군에게 힘을 주었고 국제적으로도 북부군에게 유리한 여론의 지지도 이끌어낸다.

 

그리고 노예 해방이라는 명분에 흑인들이 북부군에 대거 입대하면서 그때부터 남북전쟁은 정말 노예들을 위한 전쟁이 되어 버린다.

 

1865년 남북전쟁에서 병사가 부족하자 남부 대통령 데이비스도 흑인들을 남부군에 입대시킨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결국, 흑인들끼리 노예 해방과 노예제 유지를 위해 싸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질 뻔했으나 남부의 법이 실행되기 전에 남북전쟁은 끝난다.

 

미국은 전쟁의 상처를 빠르게 회복하면서 국민 단합을 이루었지만, 흑인들은 어떻게 자립해서 살 것인지, 인종 차별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라는 문제에서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