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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의 별미였던 굴. 어떻게 신선도를 유지, 공급했을까?

화별마 2024. 1. 2. 10:27

굴 이미지

로마인의 별미였던 굴. 어떻게 신선도를 유지, 공급했을까?

 

로마는 식품의 대부분을 속주에서 조달했는데, 와인과 올리브 오일은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인 이베리아반도의 포도 농장과 올리브 나무숲에서 생산, 가져왔고 갈리아를 비롯해서 게르마니아 등지로 수출하기도 했다.

 

이때 액체인 와인과 올리브 오일의 운반에는 필히 용기가 필요했고, 로마인은 암포라(Amphora)’라는 항아리를 제작, 화물을 운송했는데, 암포라에 담긴 식재료는 로마는 물론 유럽 전역과 아시아까지 보내졌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을 비롯, 유럽 박물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로마의 암포라는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라 거대 산업을 위한 도구였으며, 현대의 컨테이너와 비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암포라를 배로 실어 나르기 위해 조선업이 발달했고 육상으로 운반하려면 도로가 필요했는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여기서 생겨난 것이다.

 

그만큼 로마 제국은 많은 도로망이 발달했고, 로마의 1번 가도는 소금을 운반했던 소금길,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였지 전쟁에 필요한 도로가 아니었다.

 

물론 스페인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아우구스투스 가도는 군대의 이동 통로이긴 했지만, 대부분 와인을 비롯한 각종 화물 운송에 이용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도로가 건설되면 물류 이동이 늘어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당연지사...

 

로마 역시 각종 화물 운송에 따라 로마 가도를 중심으로 숙박업과 창고업이 발달했고 상인을 비롯,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지면서 속속 음식점도 생겨났으며 빨리 먹고 움직여야 했기에 패스트푸드까지 생겨났다.

 

또 로마 상류층이 즐겨 먹던 굴은 별미 중의 별미였는데, 2,100년 전 로마인은 싱싱하고 맛있는 굴을 로마에서 가까운 도시 나폴리에서 조달하기 위해 굴 양식 방법을 개발한다.

 

당시 굴 양식장에는 겨울에도 굴이 얼지 않도록 수온을 유지하는 난방 기술을 개발했는데, 그 기술은 나중에 로마 목욕탕으로 발전, 양식장 난방 장치를 목욕탕 급탕 시설로 응용했다.

 

특히 로마인들이 최고로 꼽았던 것은 브리타니아의 굴... 로마인은 약 2,000년 전에 지금의 영국 땅에서 로마까지 1,500Km가 넘는 먼 거리였지만, 살아있는 생굴의 신선도를 유지한 채 로마 귀족의 연회에 공급했다.

 

그것은 굴 양식 기술과 함께 냉동과 냉장 보관 기술이 개발되었기에 가능한 일로 이에 따라 냉동과 냉장업이 크게 발달한다.

 

이렇듯 음식이 로마의 경제와 산업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한데, 따라서 로마 제국의 번영을 로마 식탁에서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