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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와 파시즘. 똑같이 대동단결을 부르짖는 두 개념의 차이는?

화별마 2024. 1. 9. 10:46

파시즘 이미지

독재와 파시즘. 똑같이 대동단결을 부르짖는 두 개념의 차이는?

 

무솔리니는 독일의 히틀러와 비교하면 여러 부분에서 아류의 인물이지만,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맨 처음 주창해서 독일식 파시즘 나치즘보다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탈리아어로 대동단결을 의미하는 단어가 파시스모(Fascismo), 즉 파시즘으로 우리 사회의 변혁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 신군부의 군사독재를 파쇼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파시즘을 줄여 부른 말...

 

파시즘은 원래 고대 로마의 개선식에서 사용했던 권력의 상징물 파스케스(Fasces)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개선식에 참가한 자들이 월계수로 장식된 막대기를 묶은 다발을 들고 행진하면서 파스케스라고 불렀다.

 

고대의 파스케스를 현대적 용도로 처음 생각한 사람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권력자로 떠오른 무솔리니...

 

이탈리아는 중세 유럽의 중심지였지만, 근대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뒤처졌고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국가로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지만, 세계 분할이 거의 완료된 상황이라 별 재미를 보지 못한다.

 

또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처음 독일 측에 줄을 섰다가 영국의 꼬드김에 넘어가 연합국 측에 가담했으나 전승국의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당연히 전후 이탈리아의 경제 사정은 어려워졌고 국민들이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자 무솔리니는 당당한 풍채와 열정적인 연설 솜씨로 순식간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는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국민들을 현혹, 자신을 중심으로 단결하라고 외쳤는데,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정치 체제가 바로 파시스모 즉, 파시즘 정권...

 

이런 무솔리니의 성공은 개인의 영광과 국가의 발전을 혼동하는 후발 제국주의 국가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고, 일약 파시즘이 세계화된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들이 이 파시즘을 신무기로 다시 선발 제국주의 국가에게 도전한 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

 

결과는 국제 파시즘 세력의 패배였지만 그래도 종전 후 식민지에서 막 독립한 국가들은 단숨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파시즘의 눈부신 성과에 관심을 보인다.

 

우리나라를 비롯,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의 많은 신생국들이 유사 파시즘인 군사독재 체제로 국가 주도형 개발 전략을 채택한 것도 그 영향이다.

 

여기서 군사독재를 파시즘이 아니라 유사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파시즘과 독재는 정치권력이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국가 주요 정책의 노선을 권력의 뜻에 따라 전횡하는 체제라는 것은 닮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독재는 정치권력이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체제인 데 비해 파시즘은 비슷한 양태를 보이지만 국민의 다수가 지지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시즘 정권은 대개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하지만, 독재 정권은 대개 군대를 앞세운 불법 쿠데타로 집권한다.

 

그리고 독재나 유사 파시즘 모두 대동단결을 외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이 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 뿐 아니라 불가능하지만, 우리 사회의 역대 정권은 언제나 대동단결을 외쳤고, 심지어 독재에 반대했던 진보 세력조차도 대동단결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실 히틀러의 나치즘 배경에는 그릇된 민족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퇴행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민족주의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정통 파시즘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은 당연히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민족주의는 감성적 애국심과 다른 역사적 이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착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독일의 정치가 요하네스 라우는 이런 말을 남겼다애국자는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민족주의자는 남의 조국을 경멸하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집단적 민족주의는 애국심인지 미시적 파시즘인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