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경제 잡학

독일 관세동맹, 어떻게 독일제국을 통일시켰을까?

화별마 2023. 11. 18. 08:11

독일 관세동맹 이미지

독일 관세동맹, 어떻게 독일제국을 통일시켰을까?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1767년 출간한 국부론에서 과도한 지방별 관세가 국내 상업의 발달을 저해한다며 그 부작용을 지적했다.

 

그러나 고대부터 국가 개념이 확립되기 전인 중세까지 유럽 봉건영주들에게 일종의 돈줄 노릇을 했던 것이 관세...

 

일본에서도 막부시대 지방의 번주(藩主)인 다이묘가 관할 지역에서 상인들이 상행위를 하면 자릿세를 징수했다.

 

이렇게 상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안정적 상행위가 가능하도록 지원해 줄정치적 실세를 찾아 공생했다.

 

그 이유는 강력한 봉건영주가 다른 영지(領地)를 병합 또는 통합해서 최대한 큰 시장을 형성해야 상업도 발전하고 자신들의 이윤도 크게 남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거대 시장의 영주는 지역을 관할하는 왕국의 왕이 되었고, 이런 통합경제권은 자연스럽게 근대적 의미의 국가로 발전한다.

 

왕국 내에서 관세가 폐지되면 물류의 원활한 네트워크 형성과 화폐 통일 그리고 수송 인프라 작업이 수반되면서 시장이 커지고 부()가 축적된다.

 

그러나 왕국 간에 부의 불균형이 생기면서 외교적으로는 침략전쟁, 경제적으로는 관세의 부활과 폐지가 반복되는 형태로 국가 통합과 분단이 이루어졌다.

 

독일은 현재 유럽연합(EU)에서 경제우등생으로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지만, 19세기 초만 해도 유럽 내에서의 위상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훨씬 못 미쳤다.

 

당시 독일은 프로이센, 바이에른, 작센, 하노버 등 6개의 개별 영주들이 따로 관리하는 느슨한 연합 형태였고 단일 경제권도 아니었다..

 

1820년대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독일이 정치적으로 통일이 어렵다면 연방 간의 관세장벽만이라도 철폐해서 물류와 시장 통합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연방의 영주들은 주 수입원인 관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영국과 프랑스와의 국제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커지면서 당시 연방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프로이센이 앞장에 선다.

 

당시 프로이센은 베를린을 중심으로 18세기부터 번영을 구가했는데, 19세기 들어 독일 연방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고 GDP도 다른 연방을 압도하는 상황...

 

그래서 다른 연방들이 품질이 우수한 프로이센 수입 물자에 고액의 관세를 부과하며 맞섰지만, 결과적으로 독일 전체 경제의 정체를 부추길 뿐이었다.

 

결국, 프로이센은 다른 연방과의 관세를 상호 폐지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자금을 지원했고, 각 연방으로부터 일정량 이상의 물자를 반드시 수입하는 등 특혜적 대우를 약속한다.

 

이를 통해 1834년 오늘날의 FTA와 비슷한 관세동맹이 연방 내에서 체결되었고 관세동맹을 통한 전체 경제권 성장과 노동인구 증가의 혜택으로 마침내 1871년 최초의 통일제국으로 출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