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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 강정(蜜餠), 임진 전쟁의 영웅을 조롱감으로 만든 음식.

화별마 2023. 10. 9. 09:04

더덕 강정 사진

더덕 강정(蜜餠), 임진 전쟁의 영웅을 조롱감으로 만든 음식.

 

조선 시대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전쟁이 발발해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지만, 힘없는 백성들은 분풀이할 곳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왕을 욕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지 어렵고 보기 싫은 정치인에게 욕을 했다가는 권력을 가지고 해코지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것에 욕을 퍼부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음식으로, 더덕 강정에도 처신을 잘못한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인조반정으로 자리에서 쫓겨난 광해군은 식탐이 많아 맛있는 음식을 얼마나 밝혔는지 당시 한양에 임금을 조롱하는 노래가 널리 퍼졌다.

 

그때 퍼진 가사가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일기에 실려 있는데, ‘처음에는 사삼각로(沙蔘閣老)의 권세가 위세를 떨치더니 지금은 잡채상서(雜菜尙書)의 세력을 당할 자가 없구나라는 가사였다.

 

각로는 당시 영의정과 좌의정, 우의정 등에 해당하는 벼슬이었고 사삼은 모래밭에서 자라는 인삼이라는 의미로 더덕의 또 다른 이름으로 지금은 주로 반찬으로 먹지만, 예전에는 인삼 못지않게 몸에 좋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잡채는 우리가 잘 아는 그 잡채이고 상서는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하는 조선 시대 판서이다.

 

이 가사를 정리하자면 사삼각로는 광해군에게 더덕을 맛있게 요리해서 바쳐 임금의 신임을 얻었던 좌의정 한효순(韓孝純)를, 잡채상서는 진기한 맛의 잡채를 만들어 호조판서 벼슬까지 올랐던 이충(李沖)을 비꼰 것이다.

 

그렇다면 광해군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효순 집안의 더덕 요리는 어떤 음식이었을까?

 

광해군일기를 비롯한 조선 시대 여러 문헌에는 밀병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꿀 밀()에 떡 병(餠)자를 써서 더덕으로 만든 꿀떡으로 더덕 강정과 비슷한 음식이라 추정된다.

 

특히 좌의정 한효순 집안은 음식 솜씨가 특별히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효순은 어떤 인물이었기에 음식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일까?

 

광해군에게 더덕 요리를 바쳐 출세했지만, 사실 그는 용맹한 장군으로 임진 전쟁 때 특히 병참 분야에서 탁월한 공을 세웠다그는 군량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호남과 영남을 직접 찾아다니며 군량을 모아 병참 문제를 해결했던 인물...

 

그래서 임진 전쟁이 끝난 1598년 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추천으로 삼도 수군의 군량을 조달하는 책임을 맡기도 했다또 이후에는 함경감사로서 여진족 동향을 파악하고 방어책을 마련하는 등 전략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이런 용장이었던 한효순이 광해군 때의 잘못된 처신으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은 것...

 

그는 음식으로 아부해서 출세, 백성들의 비웃음을 사더니 광해군의 계모 인목대비를 몰아내는 데도 앞장서서 인조반정 이후 대신들이 그를 탄핵했다.

 

그 결과 인조가 자리에 오른 후 그가 이미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벼슬을 모두 박탈당하는 삭탈관직을 당했고 죽은 사람에게 육체적 형벌을 내릴 수는 없었기에 아들 3명이 대신 처벌을 받고 귀양을 갔다.

 

더덕 강정이라는 음식을 통한 출세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한 나라 재상 집안을 조롱거리와 파멸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가져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