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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가 담긴 음식.

화별마 2023. 10. 11. 11:13

감자 사진

감자,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가 담긴 음식.

 

농업혁명 이후 1만여 년이 지나도록 식량 생산의 증가는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고 산업혁명 이전까지도 인류는 기아와 영양부족에 시달렸다.

 

이렇게 부족과 결핍은 인류의 숙명이었는데, 그런 인류에게 신대륙 발견 이후 구대륙에 전해진 감자는 신의 선물이었다.

 

감자는 잘 자랐고 씻어서 익히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리고 밀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

 

이것이 감자가 빠르게 흉년이나 기근이 심할 때 농작물을 대신하는 구황식물의 대표로 자리 잡게 된 배경...

 

유럽에서 가장 먼저 감자를 식용작물로 재배한 곳은 17세기 초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감자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이었고 영국의 가혹한 지배로 빈곤에 허덕이던 아일랜드인들이 감자를 주식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농업지대인 아일랜드는 산업혁명이 한창일 때 영국의 곡창지대 역할을 했는데, 밀과 옥수수처럼 돈이 되는 환금작물은 영국으로 전부 팔려나가 아일랜드인의 약 40%가 감자로 연명했다.

 

이렇게 감자로 굶주림을 면하자 17세기 초 200만 명이던 아일랜드 인구가 150년 뒤인 18세기 중반에는 800만 명으로 4배나 증가한다.

 

당시 영국이 1,000만 명 남짓했던 것과 비교하면 아일랜드의 인구 증가가 얼마나 빨랐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식량을 한 가지 작물에만 의존하면 위험도 커지게 마련... 아일랜드인에게 효자 음식이었던 감자가 1845년 뿌리째 썩고 보관해둔 감자마저 썩기 시작한 것...

 

그 원인은 잎마름병으로 특정 곰팡이에 취약한 감자만 심었다가 잎마름병이 돌자 속수무책이었다.

 

잎마름병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지만 유독 아일랜드에서만 피해가 커서 19세기 최악의 이 재해를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감자 역병의 원인을 몰라 영국에서는 아일랜드인이 게으른 탓이거나 신의 저주라고 치부하는 바람에 대응이 늦어 피해가 더 커졌다.

 

거기에 영국의 곡물조례 때문에 값싼 외국산 곡물의 수입도 막았다. 결국, 아일랜드 대기근이 벌어진 뒤에 영국은 곡물조례를 폐지한다.

 

감자 대기근의 결과는 참담해서 불과 6년 사이에 110만 명이 굶어 죽거나 영양부족에 따른 각종 전염병으로 사망한다.

 

그래서 가난과 굶주림을 피해 신대륙으로 떠난 이민자가 대기근 기간 중 100만 명을 포함해 10년간 인구의 4분의 1180만 명에 이르렀다.

 

이민 행렬은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져 불과 60년간 550만 명이 아일랜드를 떠났는데, F. 케네디 대통령도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이다.

 

1912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다 침몰한 타이타닉 호의 맨 밑바닥 3등 칸은 대부분 아일랜드인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희생도 제일 컸다이렇게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 속에는 감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