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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왜 은화를 그렇게 불렀을까?

화별마 2023. 11. 30. 11:34

달러 이미지

달러, 왜 은화를 그렇게 불렀을까?

 

중국의 진시황은 금으로 만든 상폐(上幣)와 구리로 만든 하폐(下幣) 두 종류의 화폐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폐(20)와 하폐(0.5)의 교환 비율을 140으로 정했는데, 중국에서는 황제가 금속의 교환 비율만 정하고 무게와 함량 등은 사소하다고 여겼다.

 

또 진시황은 금화와 동전의 교환 비율만 정했을 뿐 은화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은 상황에 따라 13110 사이에서 움직였다.

 

이렇게 시대와 지역에 따라 교환 비율은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서양보다는 중국에서 은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유럽인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 물건을 수입할 때 은으로 물건값을 지불했는데, 그 결과 금은 유럽에 남았고 은은 꾸준히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사실 중국에서 금은 황제의 물건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예를 들어 금색은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다따라서 금은 몰래 감추어두는 물건이었을 뿐이고 그것을 일반인들이 지급수단으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서양에서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사건이 터진다. 13세기 초 오늘날 보헤미아 지역의 요아힘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된 것...

 

이후 남미에서도 은광이 발견되면서 결국 1493년부터 1800년까지 300여 년 동안 은이 금보다 30배 정도 더 많이 생산되어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을 115 정도로 정해진다.

 

그래서 독일 문화권에서는 은이 많이 채굴되는 요아힘 계곡, 요아힘스탈러가 은화의 대명사가 된다.

 

그리고 요아힘스탈러라는 단어가 아메리카 식민지까지 흘러갔고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은화를 요아힘스탈러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탈러라고 줄여서 불렀다.

 

그것이 나중에 달러로 변했는데, 달러(dollar)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라서 소문자로 쓴다.

 

그런데 은이 흔해질수록 금은 더 귀해졌다. 그리고 금본위제도를 채택한 영국에서는 왕이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함량 미달의 불량 주화를 제작한다.

 

그래서 영국의 금화는 믿을 수 없는 의심스러운 물건이 되었지만, 반면에 스페인은 남미 식민지에서 주체할 수 없이 들어오는 은 덕분에 불량 주화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국제 무역에서 스페인의 은화가 기축통화 노릇을 한다영국은 명예혁명 이후인 1696년 화폐개혁을 단행한 후 화폐에 관한 신뢰를 겨우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