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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혜공주, 노비와 비구니로 삶을 마감한 조선의 공주.

화별마 2023. 7. 2. 10:34

경혜공주 이미지

 

경혜공주, 노비와 비구니로 삶을 마감한 조선의 공주.

 

단종은 조선 시대 임금 중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엾은 임금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왕위에 올라 삼촌에게 왕위도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긴 그의 짧은 삶은 오늘날까지도 두고두고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단종 못지않게, 어쩌면 단종보다 더 기구한 운명을 겪어야 했던 여인이 있으니, 그 여인은 단종의 누이였던 경혜공주...

 

동생처럼 왕이 아니었기에 역사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삶은 한없이 불쌍하고 가엽다. 물론 공주는 단종처럼 사사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가혹할 때가 있다.

 

공주는 세종이 재위할 당시, 세자 이향(문종)과 권 씨(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세자였고 어머니가 세자의 첩이라 그녀가 태어났을 때는 공주가 아니었다.

 

당시는 세자빈이 낳은 딸은 정 2품의2 군주(郡主), 세자의 첩이 낳은 딸에게는 정 3품3 현주(縣主)라는 작위를 수여했는데, 그것도 출생 직후 바로 주는 것이 아니라 보통은 7세 이후에 부여했다.

 

그녀의 시작은 첩의 딸이었지만 초년의 운은 괜찮은 편... 3살 때, 어머니가 세자빈으로 승격됨에 따라 그녀는 세자의 처소인 경복궁 자선당에서 살지만, 7살 때 어머니가 동생(단종)을 낳고 죽는 바람에 궁을 떠나게 되고, 이 무렵부터 정 2품2 평창 군주라는 작위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할아버지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15세부터 그녀의 삶은 꼬이기 시작한다. 세종의 건강이 호전되지 않자 왕실에서는 혼기가 꽉 찬, 16세 공주의 혼사를 서두르는데 세종이 사망할 경우, 삼년상 기간에는 혼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

 

왕실에서 급히 얻은 배우자는 전 한성부윤 정충경의 아들, 정종(鄭悰)... 세종실록에 의하면 공주와 정종은 세종 32124일에 결혼했고, 이때 공주의 나이는 16세였다.

 

그런데 살림집을 차리기도 전인 세종 32217, 세종이 그만 세상을 떠난다. 결혼한 지 52일 만에 할아버지 왕이 사망해서 살림집 준비는 일단 멈출 수밖에 없었고. 이들이 살림집을 마련한 것은 세종의 소상이 끝난 뒤... 이때 그녀의 신분은 경혜공주...

 

하지만 세종의 삼년상이 끝나자, 한 달 뒤에 아버지 문종마저 세상을 떠난다. 그녀는 세종의 삼년상에 이어 아버지 문종의 삼년상까지 치러야 했으니 이때 그녀의 나이 18... 그러나 아버지의 삼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다. 당연히 동생인 단종은 허수아비 임금으로 전락했고, 그녀의 나이는 19...

 

그녀의 나이 21세 때,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고 동생은 상왕으로 승격되지만, 남편인 정종은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간다. 남편이 귀양을 간 이유는 단종을 감싸고돌았던 금성대군과 친했기 때문... 그 후, 정종의 유배지가 수원으로 바뀐 뒤부터는 남편과 함께 동행했다.

 

그러나 세조 집권 후 발생한 사육신 사건으로 그녀의 운명은 더 꼬이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고, 남편은 전라도 광주로 귀양을 떠났기 때문...

 

동생 단종이 사사된 뒤, 그녀의 남편은 4년 후에 능지처참을 당하는데 이때 공주의 나이 27... 부모도 잃고, 동생도 잃고, 남편도 잃은 경혜공주.,, 그녀는 내놓을 것이 더 있었으니 바로 공주 신분...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에 전라도 순천부의 노비가 된다. 당시 그녀에게는 여섯 살짜리 아들 정미수와 뱃속에 딸이 있었지만,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노비가 되어 순천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던 운명이 갑자기 바뀐다. 임신한 상태에 애까지 딸린 공주한테 너무 심하다는 여론을 의식한 수양대군이 그녀를 사면하고 한성으로 불러올린 것... 한성으로 돌아온 공주는 두 아이를 왕궁에 맡기고, 자신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된다. 13년간 사찰에서 여생을 보낸 그녀는, 성종이 재위할 때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의 나이 40...

 

단종도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경혜공주도 그에 못지않은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숙부가 동생과 남편을 죽이는 것을 보았고, 한때 노비로 전락했다가 비구니로 일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조선 왕실의 비극 속에서 그녀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한과 설움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단종의 죽음 뒤에 가려있지만, 어찌 보면 그녀의 기구한 삶은 단종보다 더 참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