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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맥주를 축복한 이유, 한마디로 맛이 없었다.

화별마 2023. 7. 7. 07:59

교황 이미지

교황이 맥주를 축복한 이유, 한마디로 맛이 없었다.

 

싹을 틔운 곡류로 즙을 만든 뒤 홉(Hop)을 첨가해 발효시켜 만든 맥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오래된 알코올음료...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렇게 탄생한 맥주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유럽에 퍼뜨렸고 중세에는 수도원에서 맥주 양조를 담당했는데, 6세기 영국의 한 수도원에서 처음으로 사순절 기간에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만든 이후 수도원과 맥주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각자의 양조 기술을 가지고 맥주를 발전시켰는데, 보리 같은 곡물로 만든 맥주는 영양이 풍부해서 액체 빵이라 불렀다.

 

그리고 수도원이 맥주 생산의 중심지가 되면서 맥주 판매 대금은 교회의 중요한 수입원... 깨끗한 물을 마시기 어려운 곳에서는 물 대신 맥주를 마셨기 때문이다.

 

수도원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품질이 뛰어났는데, 그 이유는 보통 사람들보다 교육 수준이 높은 수도사들이 좋은 맥주 만드는 방법을 기록해 전수했고 맥주 재료를 아낌없이 썼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 최초로 맥주를 전문적으로 생산한 곳은 스위스 북부 도시 장크트갈렌에 있는 수도원... 하지만 수도사들은 성직자로서 알코올을 만들고 마시는 것에 부담감이 컸다. 특히 중요한 종교 행사를 앞두고 술을 마셔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황에게 맥주를 마셔도 좋은지 답을 구하기로 하고 맥주를 정성껏 만들어 서신과 함께 교황에게 보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당시에는 아무리 싱싱한 맥주라도 먼 거리를 이동하면 상할 수밖에 없었고 교황은 이렇게 맛이 변한 맥주를 맛보게 된 것... 상한 맥주의 맛은 어떨까?

 

교황은 상해버린 맥주의 맛을 보고는 수도사들이 예수의 고통에 몸과 마음으로 참여하기 위해 이렇게 맛없는 음료를 마신다고 생각, 수도사들에게 사순절에 맥주를 마셔도 좋다고 허락했다.

 

거기에 맥주의 알코올 도수가 와인보다 낮은 5%라 맥주를 마셔도 몸과 마음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운동하거나 일을 해서 땀을 흘린 후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청량감과 시원함을 준다. 도수가 낮아서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맥주는 다양한 안주와 어울리며 안주 없이 마셔도 심심하지 않다.

 

그런데 이 맥주를 수도원에서 만들었고 수도원이 없었으면 맥주도 존재할 수 없었으며 교황의 축복까지 받았다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