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ra Hess, 폭탄보다 강한 음악의 힘을 보여준 피아니스트.
때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의 음악인들이 무기 대신 악기를 가지고 참전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여성 피아니스트 마이러 헤스...
그들이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은 전쟁으로 나라의 일상이 혼란스러워지자 음악회를 지속적으로 열어 런던 시민들을 위로하고, 히틀러의 침공 앞에서 담대하게 적과 맞서자는 메시지를 영국민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동료 음악가들과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점심시간 음악회를 기획, 당시 비어 있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을 콘서트홀로 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1939년 10월 10일 화요일, 처음으로 전시(戰時) 미술관 음악회가 열리고, 공연 시간이 되자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 미술관 앞 트라팔가 광장에 길게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런던은 밤낮으로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았고, 국립미술관이 런던의 중심부인 트라팔가 광장 근처라 폭격 맞을 확률이 높았지만, 연주회는 계속되었다.
1940년 10월 15일 화요일 오전 11시, 헤스는 미술관이 독일군의 오전 공습으로 폭격을 맞았다는 연락을 받자, 근처의 도서관을 임시 공연장을 마련해서 막스 길버트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현악 5중주를 연주하게 했다.
이후 전시 음악회가 열리던 국립미술관은 아홉 차례나 폭격을 맞았고, 1940년 10월 23일 수요일, 스트라톤 쿼테트가 베토벤 현악 4중주를 연주할 때는 실제로 폭탄이 미술관에 떨어지기도 했다.
비록 미술관이 진동하며 한쪽이 무너져 내렸지만,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 위의 스트라톤 쿼테트는 한 박자도 놓치지 않고 멋지게 연주했다.
헤스와 그녀의 동료들은 1939년 10월 10일부터 6년의 전쟁 동안 단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공연을 했는데, 이 연주회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다가 1946년 4월 마지막 연주회를 한다.
비어 있던 국립미술관이 다시 미술관으로 운영되자 공연이 끝나게 된 것... 국립미술관은 전쟁 중 이곳에서 열렸던 음악회를 기념하기 위해 2006년 10월 6일을 마이러 헤스의 날로 선포하고 해마다 기념 음악회를 연다.
폭탄이 비가 오듯 쏟아지는 가운데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모여들게 만든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음악이 주는 평화와 위로가 아니었을까?
전시 미술관 음악회의 첫날이었던 1939년 10월 10일, 마이러 헤스는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라 바흐의 가장 유명한 칸타타 중 하나인 BWV147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내 마음과 나의 입술의 말과 나의 행동과 삶으로) 중에서 마지막 곡인 합창곡 Jesus Bleibet Meine Freude (예수는 영원한 나의 기쁨)을 자신이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Jesu, Joy Of Man's Desiring(예수, 인간 갈망의 기쁨)을 연주했다.
이 곡은 1723년, 바흐가 작곡했는데, 그의 칸타타 147번 '내 마음과 나의 입술의 말과 나의 행동과 삶으로'(Cantata BWV 147,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의 10곡 중에서 6번째와 10번째에 들리는 널리 알려진 합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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