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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도 사람처럼 실연하면 만취한다.

화별마 2024. 1. 3. 11:19

초파리 사진

초파리도 사람처럼 실연하면 만취한다.

 

우리나라의 천재 시인 백석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속 화자는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가난한 처지로 인해 사랑을 이루기가 힘들어 결국 쓸쓸히 소주를 마시며 그리움과 고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이 시는 1937년 겨울에 썼는데, 백석이 연인 자야 김영한을 만나고 떠나는 길, 그녀에게 건넨 편지 봉투 안에 넣어 전달한 연시...

 

자야는 가난 때문에 팔려가 만난 남편과 사별 후 기생이 되어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졌으나 신분 때문에 백석 집에서 반대, 결혼하지 못한다

 

백석은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 교사 시절 이임 교사 송별연에서 만난 자야에 반했는데, 자야라는 이름은 백석 시인이 그녀에게 지어준 아호였다.

 

또 백석은 부모의 강권으로 다른 처녀와 두 차례나 결혼식을 올렸지만, 그때마다 며칠을 못 채우고 자야에게 돌아갔다이에 백석은 자야에게 만주로 도망가서 함께 살자고 제의했다가 거절당하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주고 떠난다.

 

해방 후 백석은 만주에서 자신의 고향 평북 정주로 돌아가 그곳에서 남북분단을 맞는데, 분단으로 백석과 영영 생이별을 하게 된 자야는 성북동 기슭에 대원각을 차려 크게 성공한다.

 

하지만 백석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마음속 깊이 새겨둔 채 평생 혼자 지냈고 그뿐만 아니라 백석의 생일인 매년 71일이면 식사하지 않고 그를 기렸다

 

그 후 자야는 자신이 운영하던 최고급 요정 대원각을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 무소유의 저자 법정 스님에게 절을 지어달라며 시주한다.

 

요정 터 7,000평과 40여 채의 건물은 당시 약 1,000억 원의 가치... 그렇게 탄생한 절이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다.

 

당시 언제 백석이 생각나느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데 때가 어디 있나?’라는 대답을 남겼던 자야... 

 

그리고 1,000억 원이란 돈은 백석의 시 한 줄 만도 못하다고 말했던 그녀... 과연 백석 시인이 그토록 사랑했던 나타샤다운 낭만적인 답변이었다.

 

백석 시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쯤 떠나간 연인을 생각하며 젊은 시절 쓸쓸히 술을 마신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감상에 젖어 술로 상심한 마음을 달래면  술은 그 감상을 달래주지 못하고 씁쓸한 뒷날 아침만을 만나게 해 줄 뿐이다.

 

이처럼 실연에 마음을 아파하며 허무한 삶을 더 허무하게 만들기 위해 술을 찾는 것은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고 미물인 초파리도 사랑을 잃으면 술을 마신다.

 

일반 파리보다 작은 3mm 정도 크기의 초파리는 사람과 400개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어 유전학의 좋은 실험 재료다

 

이런 초파리는 사람과 공유하고 있는 400여 개 유전자로 인해 사람과 비슷한 습성을 보이는데, 그중 하나가 실연하면 음주량이 증가한다는 것... 사랑을 잃은 아픔을 술로 달래는 모습이 사람과 닮아있다.

 

그 이유는 교배에 성공한 수컷 초파리들의 뇌에는 NPF의 양이 많은 데 비해 실패한 녀석들의 뇌에는 NPF의 양이 크게 줄어들어 알코올을 섭취하면 NPF의 양이 다시 회복되기 때문... 술이 짝짓기 실패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작용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