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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림 시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화별마 2023. 12. 8. 10:44

중림시장 사진

중림 시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조선시대 성문 밖 최대의 난전 칠패 시장은 어물이 유통되는 시장으로 전국 각지에서 마포나루로 올라온 새우젓과 싱싱한 어류들이 지금의 염천교 근처 칠패 시장으로 모여들었는데 지금의 중림 시장이다.

 

동대문 밖에도 배오개 시장이 개설되었는데, 새벽 마포에서 새우젓 항아리를 지게에 지고 만리동 고개를 넘어오는 상인들은 동쪽의 해를 받아 이마가 검게 탔다.

 

반면 동대문 밖, 배오개 시장에 야채를 공급하는 상인들은 해를 등지고 시장에 오는 바람에 목덜미가 새까맣게 탔다고... 그래서 칠패 시장 상인인지, 배오개 상인인지 구별이 가능했다.

 

칠패 시장에서 외어물전으로 장이 섰던 곳에 일제 강점기에 큰 어시장이 들어섰는데, 바로 경성어시장... 이곳은 경부선의 종착역 서울역이 가까워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어류들의 반입이 수월했다.

 

당시의 반입량의 기록을 보면 부산이 36, 인천이 17푼을 차지해 인천에서 많이 올라올 거라는 예상을 깨고 부산의 생선량이 월등히 많았다.

 

조선시대에 마포나루로 몰렸던 어류가 이곳으로 모여들었다면,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기차로 들어온 생선들이 이곳에서 판매되었다.

 

조선인들은 염장 어류와 건어물을 즐겨 먹어서 생선의 신선도 걱정이 없었으나, 싱싱한 생선을 즐겨 찾는 일본인들은 서울역으로 갓 들어온 선어(鮮魚)를 선호했다고...

 

그리고 회현동과 용산에 들어선 어시장은 1927년에 경성부에서 통합해서 경성수산시장()에게 10년간 운영권을 맡긴다.

 

경성부는 중일전쟁 이후, 1939'경성중앙도매시장'도 열어 청과물도 취급했는데, 지금의 서소문 역사공원이 사람의 목을 자르는 참수 장에서 동태 대가리를 자르는 어시장으로 변한 것...

 

그 후 1975년 수산 시장은 노량진으로 이동했고 1966년 만초천의 복개 공사를 주도했던 나진건설은 이후 용산에 청과 시장을 개설했다가 이후에 가락동으로 옮긴다.

 

지금 용산 전자상가 내의 '나진상가'는 만초천을 복개했던 나진건설이 청과 시장을 개설했다가 전자상가로 변신을 한 것이다.

 

이렇게 중림 시장은 1975년 노량진에 수산 시장을 개설할 때 따라가지 않고 남은 상인들에 의해 형성된 시장으로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까지 오랜 기간 한 자리를 지킨 시장...

 

지금은 상황이 어떨까? 장안의 3대 설렁탕집이라는 중림장, 외국인들이 소문 듣고 찾아오는 원조 닭 한 마리 집, 젊은 사람들이 초저녁부터 길게 줄 서는 '호수집'이 어시장을 대신해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