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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나라 무령왕, 호복(胡服) 때문에 죽었다.

화별마 2023. 7. 16. 20:15

호복 사진

 

중국 조나라 무령왕, 호복(胡服) 때문에 죽었다.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 쓴 몽골의 초원이라는 책을 보면 양복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옛날 북방 흉노족의 복장인 호복(胡服)은 좁고 둥근 모양의 소매에 긴 바지를 입었고 무릎까지 오는 가죽 구두를 신었는데, 그런 차림이 지금 양복의 시원이라는 것...

 

그는 또 기원전 4세기 중국 전국시대에 호복(胡服) 혁명을 일으키다 죽은 조나라 무령왕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호복(胡服)으로 인해 죽은 왕이 있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조나라의 가장 큰 걱정은 유목국가인 흉노와 마주 보고 있어 언제 싸움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 현실적 고민을 하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맹자가 말하는 유교는 문명주의를 표방해서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질 판인데, 예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었다.

 

유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문명의 기본을 이루는 것 중 하나가 예인데, 예의 근본은 복장이었다. 그래서 옷을 벗고 다니는 사람은 야만인으로 보았다. 또 귀족이나 관리들을 군자라고 해서 관을 쓰고 규범에 맞는 복장으로 위엄을 보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흉노와 같은 오랑캐에게는 그런 규범이 없으므로 짐승처럼 취급했지만, 조나라 무령왕은 현실적 관점에서 그런 가르침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고민에 고민하던 무령왕은 흉노와 싸우기 위해서 그들의 전투방법이나 복장을 따라 하기로 결심하고, ‘胡服騎射라며 오랑캐의 옷을 입고, 말 달리며 활을 쏘자는 구호를 내렸다.

 

하지만 호복(胡服) 입는 것을 반대한 숙부의 군사에게 포위가 되어, 3개월 후에 식량이 바닥나 굶어 죽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사상가는 비참하게 죽었다. 마찬가지로 무령왕도 실용주의 사상가로 굶어 죽은 것이다.

 

무령왕이 호복(胡服)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지만, 양복이 근대 군복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분명하다.

 

특히 벤트(Vent)’라는 상의 양옆 트임 또는 중앙 트임은 군복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쉽게 말을 타고 내릴 수 있도록 군복에 그런 트임을 했던 것...또 상의의 칼라 깃에 있는 단추 구멍 역시 군복에서 유래되었다.

 

브리태니커 사전은 양복은 1666년 프랑스 루이 14세와 영국 찰스 2세의 궁정에서 시작되었다고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