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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역사, 유대인 추방으로 시작되었다.

화별마 2023. 7. 15. 18:33

보석 사진

보석의 역사, 유대인 추방으로 시작되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마지막 이슬람인들을 몰아내고 스페인을 통일한 1492,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은 그해 3월 유대인 추방령을 발표한다.

 

전쟁으로 이반 된 민심을 다독이고 바닥이 난 국고를 보충하기 위해 유대인의 재산몰수와 콜럼버스의 신항로 탐사에 들어갈 왕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 그 배경이었다.

 

당시 스페인 국민의 6.5%가 유대인... 당시 이베리아반도에 살았던 세파르드 유대인은 전 세계 유대인의 절반을 차지했고, 특히 수도 톨레도는 경제와 문화를 모두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상업 도시 바르셀로나는 유대 상인들이 상권을 주도하고 있었다.

 

유대인은 14~15세기 스페인 왕국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스페인 왕국의 재정 고문을 지낸 아이삭 아브라바넬도 유대인이었는데, 스페인을 경제부국으로 만든 장본인이었지만, 유대인의 추방을 돈으로 막으려다 실각한다.

 

4개월 이내에 떠나야 하는 추방령의 내용을 보면, 유대인들의 재산 처분은 허용했지만, 화폐와 금, 은 등 귀중한 물건은 가져갈 수 없게 했다. 발각되면 사형에 처할 정도로 재산은 놓아두고 몸만 나가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소리였다.

 

1492331일 칙령이 발표되자,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은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몇 달 이내에 헐값으로 팔아 치웠다. 집을 주고 당나귀를 얻었고 포도원이 몇 필의 포목과 교환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유대인들은 재산을 급하게 처분하는 와중에서도 담보대출 시 저당을 잡았던 물품 가운데 부피가 작은 보석류를 챙겼다. 당시 유대인에게는 토지나 부동산 소유는 법으로 금지되어 대부분의 저당물은 보석류나 값진 물품이었다.

 

이 저당물들은 나중에 유대인들이 이주한 앤트워프와 암스테르담을 세계적 보석 시장으로 만든 원동력이 된다.

 

다행인 것은 늘 신변의 위험을 안고 살았던 유대인들은 모든 재산을 평상시에 나누어 놓는 습관이 있었다. 삼 분의 일은 현찰로, 삼 분의 일은 보석이나 골동품 같은 값나가는 재화로, 삼 분의 일은 기타 재산으로 부를 분산시켜 관리했다. 현대에도 안정적인 재산관리방식으로 유명한 포트폴리오(Portfolio)가 바로 여기에서 유래가 되었다.

 

이들은 수레나 나귀에 짐을 싣고, 가다가 죽기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면서 자기들이 태어난 스페인을 떠났다. 이 모든 일은 단 4개월에 완결되었다.

 

이렇게 진행된 1492년 스페인의 유대인 추방령과 유대인의 근대사는 보석의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상업적 의미에서 보석의 탄생지는 16세기 초 앤트워프와 암스테르담... 그 주역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들이 한낱 장신구에 지나지 않던 물건을 보석답게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앤트워프와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 보석이 최고의 재화가 되자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지만,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보석 광맥이 발견되자 축복이 아닌 악마의 저주로 변해 버린다.

 

보석을 차지하려는 제국주의 국가 간의 알력으로 보어전쟁이 일어났기 때문... 영국은 식민지 점령정책에 저항하는 보어인(당시 인구 50만 명, 병력 7만 명)을 제거하기 위해 45만 명의 군인을 파견, 21만 명의 민간인을 집단수용소에 감금했고, 그 과정에서 보어인 병사 27,000, 집단수용소에서는 민간인 28,000명이 비참하게 죽어갔다.

 

보어인의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을 취재했던 영국 특파원 존 홉슨은 제국주의론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이 레닌에게 영향을 주어 공산주의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 뒤 오랜 세월 동안 보석은 유대인이 운영하는 다이아몬드 채광과 유통, 가공, 도매 회사인 드비어스에 의해 장악된다. 이 회사는 생산-유통-판매-재고관리의 프로세스를 철저히 유지하면서 인위적으로 공급량이 조절, 보석을 높은 가격으로 거래했다. 하지만 드비어스는 또 다른 유대인 레프 레비에프의 도전을 받아 독점 시스템이 무너진다.

 

이와 함께 아프리카 곳곳에서 정부군과 반군들 사이에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한 내전이 발발하면서 피로 물든 블러드 다이아몬드참극까지 벌어진다. 2006년 이때의 참상을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유대인 다이아몬드 공급업자들은 최근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수요가 급감하자 암묵적으로 공급량을 조절, 오히려 가격을 인상시켰다. 참으로 유대인다운 공조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