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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생선회,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화별마 2023. 11. 30. 10:28

생선회 이미지

중국의 생선회,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고대 중국은 오래전부터 생선회뿐만 아니라 육회도 좋아했는데, 동물의 고기와 물고기를 날로 먹는다는 뜻의 ()’라는 한자를 만들어낸 나라가 바로 중국...

 

기원전 8세기 무렵 주나라 출토품에서 혜갑반이라는 그릇이 나왔는데, 윤길보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해서 구운 자라와 생선회로 잔치를 베풀었다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윤길보라는 인물은 주나라 선왕 때의 제후로 무려 2700여 년 전의 인물이니 고대 중국인들이 생선회를 즐겨 먹었다는 의미다.

 

이후 고대 중국 상류층의 음식에서도 회가 빠지지 않았는데, ‘논어에는 장이 없으면 회를 먹지 않는다고 했고, ‘맹자에는 구운 고기와 날고기처럼 사람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는 말이 보이는 것을 보면 춘추전국 시대에도 회를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

 

4세기 초의 진나라 관리 장안은 가을이 오자 고향의 농어회가 먹고 싶다는 핑계로 낙향했고 수양제 역시 금제옥회라는 농어회 맛에 빠졌다.

 

이렇게 중국에서 생선회가 가장 유행했던 시기는 7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당송 시대로 당송 팔대가를 비롯, 당시 문인들의 시와 문장에는 생선회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즉 이태백은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 마시고 시를 짓는다며 흥겨워했고, 왕유는 시녀가 들고 있는 금 쟁반에 놓인 잉어회를 읊었으며, 백거이는 아침 밥상에 올라온 잉어회를 노래했다.

 

중국의 대표 미식가로 꼽히는 소동파 역시 목숨과 바꿔도 좋을 맛이라며 복어회를 찬양했고 생선회를 소재로 쓴 시도 여러 편이다.

 

그런데 생선회 찬양이 끊이지 않던 중국에서 명나라 이후 갑자기 생선회가 사라졌고 문헌에서도 생선회 먹는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명나라 때는 생선회 먹는 사람을 야만인으로 취급하기도 했을 정도...

 

기원전 8세기 주나라 때부터 당나라를 거쳐 13세기 송나라와 원나라 때까지 생선회를 좋아했던 중국에서 명나라 이후 돌연 생선회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전염병... 원나라와 명나라 때 중국 전역에 전염병이 만연하면서 그토록 즐겨 먹었던 생선회를 먹지 못하게 했다는 것...

 

14세기 증후반 유럽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전염병에 시달렸는데, 인구의 약 30% 이상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유럽의 흑사병처럼 전염병이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전 지역에 널리 퍼진 것이 아닌 시기와 지역에 따라 산발적으로 발생해서 유럽에 비해 덜 주목을 받았을 뿐...

 

명사 태조본기에는 1344년 주원장의 출생지 안후이성 일대에 가뭄과 메뚜기 피해가 극심했고 대기근으로 인해 전염병이 돌아서 태조가 17살 때 부모와 형이 전염병으로 사망했지만, 너무 가난해서 시신을 땅에 묻을 형편이 아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혜종이 재위했던 1333년부터 1369년까지 전염병이 돌았다는 기록이 열두 차례나 되어 평균 3년에 1번 꼴로 전염병이 유행했던 셈... 특히 즉위 20년째 되던 해에는 매장 인원만 20만 명이 넘었다고 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고대에 생선회를 그렇게 즐겼던 중국이 원말 명초를 전후로 식탁에서 생선회를 없애버린 것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