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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악탕, 왜 최고의 궁중 음식에 이런 이름을?

화별마 2023. 11. 28. 10:11

승기악탕 이미지

승기악탕, 왜 최고의 궁중 음식에 이런 이름을?

 

고려 시대 몽골 침입기에 원나라는 서북면병마사 기관과 최탄 등이 투항하자 황해도에 동녕부를 설치했지만, 1290년 다행스럽게 고려 충렬왕 때 되돌려 받는다..

 

그리고 1395년 조선 태조 4년에 풍천과 해주의 이름을 따서 풍해도로 불리다가 1417년 태종 18년에 황주와 해주의 이름을 따서 황해도가 된다.

 

이후 해주는 황해도의 관찰사가 머무르는 감영 소재지가 되었는데, 해주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은 조선 최고의 궁중 음식으로 손꼽히는 승기악탕(勝妓樂湯)’... 탕이 붙는 것으로 보아 국물이 있는 음식인 것 같은데 왜 이런 이상한 이름을 붙였을까?

 

조선 초기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는 야인으로 불리는 여진족들이 자꾸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골치가 아팠다그래서 세종은 최윤덕과 김종서를 보내 4군과 6진을 설치하게 하고 남쪽의 주민을 이주시켜 평안도와 함경도에 살게 했지만, 야인들은 계속 국경을 넘어왔다.

 

그러자 1460년 세조 6, 신숙주를 파견하여 두만강 건너의 야인들을 소탕했고 명의 요청으로 건주여진을 치기 위해 윤필상이 이끄는 북벌군에 남이, 강순, 어유소를 보내 이들을 소탕한다.

 

그리고 정벌한 곳에 사민정책을 펴서 남쪽의 주민을 이주시켜 살도록 했다. 그런데 성종 때가 되자 야인들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온다.

 

이에 성종은 허종을 파견해서 야인들을 막아내게 했는데, 1460년 야인들이 침입했을 때 평안도 병마절제사도사로 출정한 기록과 1465년 이후 평안 · 황해 · 강원 · 함길도체찰사 한명회의 종사관이 되어 북벌에 공헌한 기록, 1477년에 건주위의 여진족이 침입하자 평안도 순찰사로 파견된 기록이 남아있다.

 

해주의 전통음식 승기악탕은 바로 1460년에서 1477년 사이에 허종이 대접받은 음식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홍선표가 1940년에 저술한 조선요리학을 보면 왜 허종이 대접받은 음식에 승기악탕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한 유래가 들어있다.

 

그가 야인들을 막아내기 위해 의주에 도착하자 백성들은 허종을 환영하는 뜻에서 진기한 도미에 갖가지 양념을 한 특이한 음식을 대접했다는 것...

 

한양에서 임금을 모시며 여러 가지 귀한 궁중요리를 먹어본 허종이지만, 도미를 재료로 한 해주 요리는 너무 맛이 훌륭해서 감동한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음식 이름을 물어보았으나 백성들은 허종을 위해 처음 준비한 음식이라 아직 이름이 없다고 대답한다.

 

허종은 크게 기뻐하며 풍악을 울리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기녀와 술보다 이 음식이 더 낫다고 하여 기생과 음악을 능가하는 탕이라는 뜻으로 승기악탕(勝妓樂湯)’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승기악탕은 일명 노래와 기생을 능가하는 탕이라 하여 ‘승가기탕(勝歌妓湯)’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기생을 능가하는 절묘한 탕이라 하여 ‘승가기탕(勝佳妓湯)’이라고도 불렀다.

 

이는 궁중에서 진찬 등이 벌어질 때나 반가에서 경사가 있을 때 차려지는 최고급 음식으로 조선 후기 문신 최영년의 한시집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 승가기탕이야 말로 해주의 명품 요리라고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