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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연산군 시대 윤순, 왕팔채로 출세한 못난 인물.

화별마 2024. 1. 2. 10:02

연산군 이미지

 

조선 연산군 시대 윤순, 왕팔채로 출세한 못난 인물.

조선 연산군 시대, 왕의 음란한 행동이 점점 심해져 성균관과 원각사를 주색의 장으로 만들고 미녀를 구하기 위해 전국에 채홍사를 파견할 무렵... 어느 날 연산군은 종친과 놀겠다며 가까운 일가는 물론 촌수가 먼 사람도 초대했는데, 부인들까지 불렀다.

 

이때 초대를 받은 젊은 부인들은 예쁘게 화장하고 향()을 차고 입궁했는데, 윤순의 처 구씨(具氏)도 종실의 한 사람으로 이 초대연에 참가한다.

이날 연산군이 연회에 참가하는 부인들에게 남편의 이름을 옷깃에 붙이고 오라고 명하자, 남편의 벼슬이 높은 것을 자랑하듯 커다랗게 써 붙이고 들어오는 부인도 있었다.

 

사실 연산군은 종친들의 부인 중 누가 가장 예쁜 여인인지 고를 심산, 부인들은 하나하나 임금 앞에 조아리면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당시 윤순의 부인은 종실 사이에서 가장 예쁘다고 소문이 났는데, 연산군은 이때 구 씨 부인을 처음 보았지만, 구씨 부인을 옆에 불러놓고 처음에는 말만 주고받다가 술기운이 돌자, 손목도 만져보고 껴안았다.

 

구씨 부인은 약간 수줍어할 뿐, 연산군이 하는 대로 몸을 맡겼고, 밤이 깊어 연회가 끝나자, 구 씨 부인은 왕의 침실에 있었다.

다음 날 윤순에게 정 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의 직첩이 내려졌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승진한다.

 

훗날 사간원 간원이 중종에게 윤순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출사한 지 5년 만에 자헌대부로 승진했으며, 아내 또한 연산군 승은을 입어 대궐에 드나들어 추잡한 소문이 있었다그때 사람들은 윤순이 초고속 승진하게 된 것은, 계집을 판 값이라 했다며 통박한다.

 

이어서 중종 12년 부제학 이자 등이 윤순의 처 구씨는 본래 음사(陰邪)하고 간특한 자질로, 그가 요사하게 꾸며 남의 마음을 혹하게 하는 모양은 실로 창기(娼妓)보다도 심한 데가 있다.

 

윤순 또한 일개 시정의 거간꾼으로, 본래 사특하고 탐심이 있는 데다 망령되고 사납기까지 해 선류(善類)를 원수와 같이 여기는 자로 지난번 폐조(연산군) 때 말 잘하고 아첨 잘하는 것으로 총애를 얻어 몇 달 사이 숭품(崇品)에까지 올랐다.

 

윤손의 조적(朝籍)을 삭탈하고, 구씨를 교외로 물리쳐 그들이 통교하는 길을 영구히 끊어놓게 하라고 간언 한다..

 

조광조 역시 문정왕후를 책봉할 때 정언(正言)의 직책으로 음탕하고 더러운 물건이 대례(大禮)에 참례할까 염려되니 성 밖으로 내쫓고 성안에 머물지 못하게 하라고 직언해서 중종이 허락한다.

 

음탕하고 더러운 물건은 윤순 부부를 가리키는 말로 결국 중종 13년 대사헌 조광조가 도학정치를 펼쳐지면서 윤순이 숙청되자 당시 세인들은 윤순의 왕팔채가 끝났다며 비웃었다.

 

왕팔채(王八債)’는 중국 북방 속어로 기루(妓樓)에서 심부름하는 사람 또는 기둥서방을 뜻하는데, 자기 여편네의 몸값으로 산다는 말 혹은 다른 남자가 자신의 처와 관계한 것에 대해 남편이 요구하는 화대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