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예술 잡학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그리고 로버트의 편지...

화별마 2023. 7. 4. 17:49

영화 매디슨 카운티 다리 포스터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그리고 로버트의 편지...

 

언제 당신이 이 편지를 받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 편지가 당신 손에 제대로 전달되길 바랍니다. 어쩌면 내가 죽은 후가 될지도 모르겠지요. 이제 내 나이도 예순다섯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당신 집 앞에서 길을 묻기 위해 차를 세운, 13년 전 바로 그날입니다.

 

내가 소포로 보내는 카메라들.... 기억이 나겠지요. 나는 이 카메라들이 중고품 가게의 진열장이나 낯선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소포를 받고 잠시라도 당신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신이 이것들을 받을 때면 낡고 모양도 보잘것없을 겁니다. 하지만 달리 이걸 남길 만한 사람이 내게는 없기에 당신에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결정을 한 후에도 이 물건들이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합니다.

 

당신을 떠나온 이후로 나는 1965년에서 1975년까지 거의 길에서 살았습니다. 당신에게 전화하거나 당신을 찾아가고 싶은, 정말 참기 어려운 그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였지요. 깨어 있는 순간마다 느끼는 그 참을 수 없는 유혹을 잊기 위해 당신을 멀리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다른 나라에 가서 일했습니다.

 

빌어먹을, 난 아이오와의 윈터 셋으로 가겠어.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프란체스카 당신을 데리고 와야겠어.’라고 중얼거린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 당신이 내게 한 말과 또 당신의 입장을 이해하기에 참고 또 참았습니다. 어쩌면 당신 말이 백번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 무덥던 금요일 아침, 당신 집 앞길을 빠져나오던 일은 내가 지금까지 한 일과 앞으로 할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이지, 살아가면서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을 겪을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마음속에 당신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고 있습니다. 이 말 외에 내가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몇몇 아는 여자들이 있었지만, 당신을 만난 이후로는 없었습니다. 의식적으로 금욕 생활을 한 것이 아니고 당신 이외에는 누구도 관심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사냥꾼 총에 짝을 잃은 거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도 아는 것처럼 거위들은 평생 한 쌍의 부부로 삽니다. 거위는 며칠 동안 호수를 맴돌고 있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거위를 보았을 때도, 갈대밭 사이에서 짝을 찾으며 안타깝게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소 감상적인 기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그때의 그 거위 모습은 내 심정하고 너무 똑같았습니다.

 

안개가 내린 아침이나 해가 지는 오후에는 당신이 내 삶 속의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지,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순간에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물론 당신은 마당을 서성거리거나, 현관의 놓인 그네에 앉아 있거나, 아니면 부엌 싱크대 옆에 서 있겠지요. 내 상상이 맞지요?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서 어떤 향기가 묻어났고, 당신이 얼마나 상큼한 느낌을 주었는지, 그리고 내 살에 닿은 당신의 살갗이며, 사랑을 나눌 때 당신이 속삭이던 그 목소리 까지도...

 

로버트 펜 워렌이라는 사람은 신이 포기한 것 같은 세상이라고 그의 책에 쓴 적이 있습니다. 내가 시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아주 비슷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식으로 살 수는 없겠지요.

 

그런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을 커지면 나는 자동차를 타고 며칠씩 고속도로를 달리곤 했습니다. 내 스스로 그런 약한 연민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내 스스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신을 만났던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주고받았습니다. 신이든, 이 세상의 조화와 질서를 만드는 그 무엇이든 그 속에서 흐르는 시간은 우리에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넓고 넓은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면 나흘이든 4억 광년이든 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고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나 역시 이 세상의 한 사람일 뿐... 아무리 철학적인 이성으로 판단해도 매일, 매 순간,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보낼 수 없는 시간의 통곡 소리가 내 머릿속 깊은 곳까지 들립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내가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하는 로버트가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