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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47. 왜 점보라는 애칭이 붙게 되었을까?

화별마 2024. 1. 9. 09:50

보잉 747 사진

보잉 747. 왜 점보라는 애칭이 붙게 되었을까?

 

1958년 최초의 제트 여객기 보잉 707이 제작에 성공하자 1960년대 초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객 수가 폭증한다.

 

팬 아메리칸 항공사의 창업자이자 당시 사장이었던 후안 트립은 빠르게 성장하는 여행객 수요에 맞추어 한 번에 400명의 승객을 실을 수 있는 대형 항공기를 개발해 줄 것을 보잉사에 요청한다.

 

400명이라는 탑승자의 수는 보잉 기존 707 탑승객 수의 2배에 달하는 것이었지만, 후안 트립 사장은 당장 큰 항공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

 

다행히 보잉은 미 공군의 거대 수송기(C5) 프로젝트에 선정되기 위해 초대형 항공기 설계를 연구해 오고 있었다.

 

비록 보잉이 이 프로젝트 입찰 과정에서 록히드에 밀려 떨어졌지만, 후안 트립이 원하는 초대형 여객기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보잉의 설계안은 1, 2층에 모두 승객 좌석을 배치한 복층 여객기 스타일로 1층에 좌우로 8개 좌석, 2층에 좌우로 7개 좌석을 배치하고, 좌석 사이 통로는 1, 2층 모두 2개씩 둔 구조...

 

하지만 승객의 대피 경로가 복잡하고 화물 운송 능력이 제한될 거라는 우려 때문에 좌우를 더 넓힌 1층 여객기로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그래서 좌우로 10개 좌석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통로를 2개 두는 레이아웃으로 변경했는데, 세계 최초의 광폭 동체 항공기였다.

 

그리고 2층은 설계 그대로 만들었고 2층 앞부분에 조종실을 두었는데, 2층을 만든 덕분에 항공기의 원추형 앞부분인 노즈콘을 위로 열어, 대형 화물을 싣는 장치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래서 2층 앞부분만 유지하고 뒷부분은 없애 밖에서 측면을 보면 2층 앞부분이 마치 머리처럼 불룩 튀어나온 특이한 모습이었다.

 

2층 조종실 뒤에 조금 남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할 방안을 고민하다가 고정 좌석이 없는 라운지를 만든다.

 

이렇게 설계한 초대형 여객기 보잉 747을 생산하려면 무엇보다 비행기에 맞는 신형 엔진을 개발해야 했다따라서 개발하려는 신형 엔진은 이전의 터보제트 엔진에 비해 출력이 2배에 달하고, 연료 소모량이 3분의 1 적어야 했다.

 

사실 이 기술은 GE가 먼저 연구했지만, GE는 미 공군과 록히드의 C5 갤럭시 수송기에 들어갈 엔진을 개발하는 데에 몰두했다.

 

다행스럽게 엔진 제조 기업 프랫앤휘트니도 똑같은 기술을 연구하고 있어서 보잉과 함께 어떤 상업용 제트 엔진보다 강력하고 연료 효율이 높으며 소음이 적은 JT9D 고 바이패스비 엔진을 개발한다.

 

새롭게 생산할 보잉 747은 동체 길이가 미식축구장 크기고 꼬리 부분은 6층 건물 높이였으며 빈 항공기의 무게는 보잉 7073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잉이 747 여객기에 투자한 개발비는 총 10억 달러... 이 여객기가 실패하면 회사도 함께 망할 상황...

 

당시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보잉 747이 재앙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너무 커서 날 수나 있을까’, ‘충돌 사고를 낼 것이다’, ‘활주로를 마비시킬 것이다’, ‘공항 터미널을 혼잡하게 만들 것이다등의 부정적 전망을 쏟아냈다.

 

1968930일 활주로에 나온 보잉 747 여객기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만해도 애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예상대로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보잉은 문제를 수정했고, 196912월에 보잉 747 여객기는 운행 적합 판정을 받는다.

 

1970년 팬 아메리칸 항공사는 보잉 747 여객기로 승객을 운송하기 시작했는데, 엔진 문제로 첫 비행은 예정보다 7시간 늦었지만, 이후 보잉 747 여객기는 세계 각국 공항과 터미널 체계에 완벽하게 적응, 논란을 잠재운다.

 

이후 보잉 747 여객기에는 점보라는 애칭이 붙는데, 보잉 747이 얼마나 대중의 호감을 얻었는지 알 수 있다.